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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02. 2024

케이팝 울타리 넘어 글로벌 '록스타' 선언한 리사


방콕 차이나타운 야오와랏 거리를 빌려 찍은 뮤직비디오의 도입부 숏부터 ‘인스타그램 1억 팔로워’를 거느린 리사의 영향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로살리아, 두아 리파, 빌리 아일리시와 작업한 헨리 스코필드의 그 스타일리시 영상과 테임 임팔라의 ‘New Person, Same Old Mistakes’를 샘플링한 음악을 앞세운 ‘Rockstar’로 리사가 전하려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의 ‘태국인’ 정체성이다.     


리사는 여태껏 자신의 출신과 그곳 문화를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Rockstar’ 뮤직비디오의 시작을 “일본 특유의 사이버 펑크 미학”을 반영한 네온사인으로 꾸민 야오와랏 거리로 설정한 것은 그 연장선으로, 촬영을 위해 상점 대표들에게 일일이 ‘대여료’를 지불했다는 소문은 리사가 자신의 뿌리에 관해 얼마나 얘기하고 싶었고 또 어떤 식으로 얘기하고 싶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장소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외양에도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싱글 커버 사진에서도 드러나듯 거침없이 태닝한 리사의 피부 얘기다. 이는 흰 피부를 우월한 미모 또는 지위의 잣대로 여기는 ‘아시아식 미’의 낡은 기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미권 평단에선 피부색이 비교적 어두운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흔히 받는 ‘피부를 밝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리사가 직접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뮤직비디오를 본 잡지 ‘보그’가 지적했듯, 리한나의 2023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연상케 하는 흰색 후드 셔츠 집단 시퀀스에서 더 돋보이는 리사의 모습은 그래서 한 개인을 프로그래밍된 로봇으로 만들려는 인종적 미의 기준에 대한 리사의 반란으로까지 확대된다.


인종적 편견을 향한 그의 심판은 “리사, 일본어 가르쳐 줄 수 있어? / 나는 하이, 하이(네네)라고 말하지”라는 후크 가사에서도 계속된다. 언뜻 지나쳐버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 짧은 대화문은 아시아의 인종적 동질성을 전제하는 서양인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에 대한 비꼼에 가깝기 때문이다. 리사가 여기서 굳이 일본을 선택한 건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음악 시장을 가진 나라라는 이유로 과거 성공한 아시아 아티스트는 대게 일본인일 것이라는 선진국 사람들의 섣부른 추측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글로벌 업계에 몸담으며 ‘태국 여성’으로서 리사가 극복한 어려움들을 강조한 것으로 수렴되는데, 따라서 리사의 성공은 인종 및 출신국과 관련한 사람들의 거대한 편견에 맞선 승리이기도 하다.




요컨대 ‘Rockstar’는 편견과 과소평가에 동시에 노출된 동남아시아 여성도 성공의 정점에 도달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한 선언인 동시에, “나만의 아름다움은 내가 정의한다”라는 삶의 설계자로서 주체성의 강조이다. 아울러 자신의 선택과 신념이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개성을 포용하는 찬가”이자, “규범에 순응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Rockstar’는 세상의 검증을 구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열정을 추구하자는 리사의 단도직입적인 메시지다.    


K팝 떠난 블랙핑크 리사, 태국서만 1위. 아쉬운 솔로 출발.     


여기까지가 올해 초 RCA와 솔로 계약을 맺고 자신의 새로운 매니지먼트 회사 ‘라우드(LLOUD)’를 세운 리사가 발매한 ‘Rockstar’의 해외 리뷰를 종합한 얘기다. 그리고 위 헤드라인은 불과 3일 전 한 국내 언론사가 내건 기사의 제목이다. 제목에서부터 한국 독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 리사가 입은 ‘별모양 의상’의 표절 의혹에 관해서도 몇몇 언론들은 한 중국인 디자이너의 SNS 주장을 토대로 날을 세웠는데, 과연 리사가 한국인이었더라도 그런 기사를 내보냈을까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지난 곡들인 ‘LALISA’나 ‘MONEY’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아쉽다는 음악적 평가는 그나마 ‘Rockstar’를 ‘케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리사와 그의 음악을 바라본 건강한 견해들이다. 그렇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와중에도 ‘Rockstar’는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8위에 오른 것을 넘어 유튜브 뮤직비디오 트렌딩 월드와이드 정상에까지 올라 리사의 글로벌 트렌드세터로서 위치를 재확인시켰다. 우린 그저 ‘블랙핑크 출신’인 리사를 더 응원해주고 자랑스러워 해주면 되는 것 아닐까.    


알려진 대로 케이팝은 국악 같은 장르가 아니다. 제이팝, 브릿팝처럼 팝은 팝이되 ‘한국’ 시장에서 나왔으니 붙인 산업 차원의 구분이자 위치일 뿐이다. 영미권 대중음악 소스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케이팝은 시작부터 해외를 노렸고 지금은 더 노리고 있다. 다른 글들에서도 간간이 언급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런 케이팝에 이중 감정을 갖는다. 바로 다국적 멤버 구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을 ‘케이’라는 국가적 범주에 가두려는 심리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휘젓길 바라면서도 그 주체만큼은 ‘한국인’ 멤버이길 바라는 심리다. 이 뒤틀린 집단적 소유욕이 리사의 신곡을 두고 ‘케이팝이냐, 타이팝이냐’ 냉소적인 말장난들을 하게 만들고 있다. 리사는 더 이상 케이팝 스타가 아니다. 그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록 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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