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10. 스스로 박수치기
살사 수업을 마치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보낸 우리는 앙꼰해변으로 출발했다. 하늘색 올드카가 우리를 바다로 데려다주었다.
‘여기가 카리브해구나’
나는 맨발로 모래사장의 감촉을 느꼈다. 차가운 파도에 발을 적셨더니 머리가 시원해졌다. 파도가 건드리고 간 발가락이 간지러웠다. 기분이 좋았다.
발을 옮겨 모래 위에 발도장을 남겼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다. 다시 쓸려가는 바닷물이 모래사장을 촉촉이 적시며 발자국을 싹 씻어냈다. 더럽혀졌던 생각이나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것 같았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널찍한 바다와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늘은 그러데이션 빛깔을 만들어냈다. 원래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나지만, 그날은 바다가 눈부시게 예뻐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 위에서 따뜻한 색으로 사라져 가는 태양. 그 모습을 특별하게 남기고 싶어 졌다.
“찍고 싶은 사진 구도가 생각났어요. 제가 하트를 손으로 만들 테니 여기에 태양을 담아주세요.”
나는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자세를 취했다. C는 석양을 배경으로 등지고 서 있는 내 손안에 태양이 들어오도록 구도를 잡아주었다.
“H 손을 좀 더 위로 올려봐. 오케이 좋아.”
적당한 위치에 내 손이 맞춰졌는지 C의 셔터 소리가 들렸다.
찰칵-찰칵-
나는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잘 나와요?”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나는 자세를 취한 채로 가만히 있었고, C는 적절한 구도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우리는 멋진 사진으로 그날의 바다를 기록했다.
한국에 돌아와 멋들어진 주황 하늘을 담은 사진을 다시 보는데, 헛헛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의 20대도 이제 거의 다 지고 있구나.’
지난날 동안 나는 석양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물어 가는 태양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몰랐다. 가장 밝게 빛날 때,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가장 뜨거울 때의 태양을 동경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저문다’란 단어는 그간 나에게 별로 닮고 싶은 단어가 아니었기에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저물어간다는 건 왠지 쓸쓸한 기분이니까. 그래서 지는 해에게도 정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들었다. 멋들어진 석양 사진과 어울리는 노래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듯한 노랫말이 나를 토닥여 주는 듯 들렸다. 빈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서 돌아온 노인이 ‘여보시게’하며 어깨를 툭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Bravo My Life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에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것이 길이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1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니가 가는 것이 길이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살아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개들어 하늘을 봐 창공을 가르는 새들
너의 어깨에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라
서툴게 살아왔다고 후회가 남는다고 자책하는 마음에 위로를 주는 곡. 그리 나쁘게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다며 수고했다며 박수를 보내주는 노랫말. 터벅터벅 들리는 그 가사를 따라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마음이 좀 너그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헤밍웨이의 마음을 훔친 카리브해 석양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뭐가 문제인가. 사라져 가는 태양을 손안에 담아보겠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