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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길 colour Apr 23. 2024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앞으로 아름다웠으면 하는 날들






포도뮤지엄에 다녀왔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나이 듦과 기억의 상실, 그로 인한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의 취약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하여 물어온다.

 

나이 듦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꺼이 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나이 듦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몸의 노화, 그에 따른 상실과 초라함, 사회적 배제가 연상된다. 젊고 쌩쌩한 몸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던 입장에서, 더 이상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우울한 내 뒷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존재는 뭉크의 절규에서처럼 형체가 흐트러지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증발해 버릴 것 같다. 요즘 들어 유독 눈길이 가는 시술과 트레이닝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런 두려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중년에 들어서며 전과 같지 않은 몸의 움직임이 버겁고 걱정스럽다. 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내가 훗날 누군가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 억울한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누군가에게 하찮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걱정을 하는 가운데에도, 삶은 흐른다. 머물러 있지 않으니 흘려보내고 때론 놓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흐르는 삶에서 몸이 노쇠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이다.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상황에 처하면 정신이 온전한 틈을 타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족에게 물리적, 경제적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나이 듦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가?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눠 봤는가? 나이 듦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나이 듦은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하고 싶은 시한 폭탄이다. 하지만 예외는 없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기억이 부서지고, 구석에 몰린 영혼이 완전히 혼자인 취약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필연적인 취약함에서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건, 취약함이란 상황을 조금 더 깊이 있게 경험했던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남다르게 반응하고 찐심이라는 것이다. 삶에서 실패 없이 홀로 기고만장한 누군가보다, 주춤거리거나 한 발짝 물러서는 경험을 많이 했던 누군가의 온기가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또한 이별의 고통, 기회의 상실, 주저앉는 듯한 무력감 등 평소에 피하고 싶거나 형편없어 보이는 부정적 감정들이 의외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공감하는 데 꽤나 쓸모가 있는 듯하다. 어제와 조금 다른 나를 다듬는 데 역시 매끄럽게 쓰일 만하다.     

작년 엄마의 인생 여정을 인터뷰하고 짧게나마 기록했던 과정을 떠올리며 나에게 되물어 본다. 20대의 나였다면 엄마의 이야기를 온전히 적어낼 수 있었을까? 십중팔구 울화통이 터져 문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그에 비해 40대 후반의 나는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이야기는 어물쩍 흘려내기도 하고 맞장구도 치며 엄마와 짧은 기록을 완성했다. 벗 허영 돌보멍 같이 늙게라며 엄마와 굳게 굳게 손가락 걸고 약속도 했다.


은교라는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 반, 부탁 반의 심정으로 이야기한다. 한 때의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자만하지 마라!


내 마음도 다잡는다. 곧 50을 바라보는 지금, 전과 달리 아름답지 못한 날들이 훨씬 많을 수 있겠구나 한숨이 먼저 쉬어진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내 삶의 단편임을 받아들일 결심을 마음깊이 쿡쿡 눌러 심어본다.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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