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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아 Aug 15. 2017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평화가 더딘 이유

제2차 세계 대전 젊은 알자스 남자들은 독일 군복을 입고 프랑스군의 적이 되었습니다. 1940년 전엔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독일 나치군의 점령만 아니었다면 평화롭게 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형제와 동포를 죽여야 할 운명에 놓였어요. 알자스 사람들에게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malgré-nous'란 표현은 이런 역사적 고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었건만 남북으로 갈리어 처절하게 싸운 한반도와 알자스는 이런 지리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독일은 사죄를 했고, 일본은 사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범인이 아닌 희생국 인양 태도를 보였어요. 이게 독일과 일본의 차이고 유럽과 극동 아시아의 해방 후 다른 상황입니다. 극동 아시아가 평화로 가는 길이 너무도 더딘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잘못을 하면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38선이 생긴 지 칠십 년이 지났고 한국전쟁 이후 오도 가도 못하는 게 64년이나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못살게 되었고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열망했던 사람들은 '빨갱이' 또는 '간첩'이란 올가미에 걸려 감옥에 갔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사람들은 더 잘 살았습니다. 형제와 동포를 사랑하면 죄가 되고 미워하면 합법인 게 한반도 남북한의 부조리한 법입니다.


유럽엔 각 나라의 국경마저 없어져 자유롭게 드나들고 여행을 합니다. 한반도는 38선으로 갈리어 대한민국은 섬 아닌 섬이 되었습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외국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자유롭게 버스, 기차, 자동차로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본 한국 사람이라면 한반도에서 대중교통으로 중국, 러시아를 저렴한 돈으로 '여행하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해 본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남북한으로 갈라진 지 너무도 오래되어 분단된 상황이 더 편하고 통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긴장된 상황은 우리를 두려움엔 떨게 합니다. 이럴 때 유로 환율이 올라갑니다. 원화는 내려가고요. 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달라집니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돈을 빼겠죠?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지 않겠죠? 가난한 유학생은 더 가난해집니다. 한국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주저하게 됩니다. 누가 이익을 볼까요?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만드는 진원지가 어딘지 잘 살펴야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었어도 아직 한반도에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오려다가 멈추었습니다. 분단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한국 사람은 정신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고착화되어가니까요. 식민지의 상처와 분단의 상처를 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은 굶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배우게 하기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제 우리 어른 세대는 자식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더 원대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섬아닌 섬이 되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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