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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Dec 11. 2019

더 킹 : 헨리 5세

운명에 굴복한 어느 위대한 왕에 대하여,

운명에 굴복한 어느 위대한 왕에 대하여,

100년이란 시간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족히 한 사람의 생애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무지막지한 시간동안 전쟁과 살육을 멈추지 않은 두 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 광기의 역사를 피해 숨어알던 어느 한 탕아가 있었다. 고귀한 신분의 헨리는 궁중의 흔적을 냄새로 씻어내려는듯 지독한 냄새로 가득한 시궁창에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친다. 지독하게도 역사의 광기는 헨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헨리는 이제 광기의 숙명 앞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튀기는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마침내 마주한 아쟁쿠르의 들판은 전쟁의 참혹함을 끔찍하게 드러낸다. 그곳에 기사도는 없고, 전쟁의 낭만은 없다. 피와 진흙이 낭자하는 들판만이 있다. 승리한 왕도, 패배한 왕도 그 누구도 얻은 것이 없는 전쟁은 그렇게 계속돼 왔고, 우리는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의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왕은 피로 쓰인 자신의 공적 위에서 위대한 왕으로 기억된다. 우리 모두는 그리고 그가 어떻게 되는지 또한 알고 있다. 아마도 헨리 5세는 그렇게 전쟁을 끝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피의 역사 위에 쌓아올린 평화를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그 통합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천세 만세를 꿈꿨을테다. 그의 치세는 끝나고 두 국가는 다시 한번 전쟁의 광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역사다.

영화는 역사극이라기에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물론 아쟁쿠르 전투 등의 묘사는 굉장히 사실적이었지만 우리는 이른 역사적 사실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하자). 세익스피어가 그려낸 헨리 5세의 탕아적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했으니 이는 문학 속의 어느 위대한 왕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백년전쟁과 아쟁쿠르 전투에 대한 명확한 명칭이 나오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다.

나름 괜찮은 영화였지만 역시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백년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이 많다.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조금 배웠는데도 인물이 누구인지, 이 시대가 어느때인지를 알아야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시대의 지점을 점찍을 수 없어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혹여라도 영화를 보게 된다면 백년전쟁에 대한 개괄적인 사실이라도 알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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