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할머니 저리가! 냄새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품에서 잠들며 맡았던 포근한 살냄새를 본능적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애를써도 엄마의 살냄새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와 손을 잡거나 따뜻하게 안아본 태초의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스킨쉽을 하지 않고 지냈기때문이다.
엄마의 살냄새를 느낄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기에 엄마는 억세고 무척 신경질적인 말투를 항상 뿜어냈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있는 공간은 늘 불편하고 눈치가 보였으며 어려웠다. 20대에는 단순히 엄마의 성격이겠거니 했지만 30대 써니의 엄마가 되고나서 존재자체만으로도 기쁨인 아이를 보며 엄마특유의 송곳같은 분위기를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의 존재는 왜 엄마에게 기쁨이 아닐까? 우리 엄마는 왜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어주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될 만큼 내 마음에 엄마는 무색무향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구로 이사를 오며 아침마다 아이를 챙기러 와주시는 엄마에게서 어느날 부터 새로운 향기가 났다. 마늘냄새다. 아침에 아이가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하고 인사를 했다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윽! “할머니, 저리가! 냄새나!” 라고 이야기했다.
할머니, 저리가! 냄새나!
엄마의 사랑은 언제부턴가 마늘냄새가 되어
엄마로부터 멀어지고싶었다.
엄마는 요리솜씨가 좋기로 유명하다. 30년을 넘게 삼시 5-6끼를 차리는 세월을 버티며 생긴 내공은 청담동 수제 반찬가게보다 훌륭한 맛으로 식탁을 장식했다. 아침부터 갖은 양념을 만들기 위해 마늘을 까고 빻다보니 엄마의 머리카락과 옷에는 늘 싱싱한 마늘과 집간장, 고춧가루 풋내로 엉켜있다. 6살 아이의 입맛에도 맛있는 고사리와 가지나물이니 얼마나 맛있을까? 신선한 나물반찬의 근원이 할머니의 마늘향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지 못한다. 엄마의 사랑은 그렇게 마늘냄새가 되어있었다. 억척스럽게 살면서 생긴 인내와 화, 고단함은 포근한 샴푸향기와 분냄새로 자식들을 안아주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겠다고 짐작한다. 자신의 자리를 밥을 차려주고 먹이는 것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싶으셨을까? 엄마의 사랑은 마늘 냄새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알면서도 마늘처럼 톡 쏘는 엄마의 말이 싫어서 거리를 둔다. 마늘냄새인척 고개를 돌리지만 어쩌면 송곳같은 엄마의 말과 표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를 지키키려는 본능이 아니었을까?
내일 하루는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으니 고단한 마늘 냄새같은 짜증대신에 포근하게 감싸는 비누 향내나는 엄마의 눈빛을 보고싶다. 밥 한끼 3분 카레를 먹더라도 전혀 상관없다. 참치캔을 뜯어서 우걱우걱 먹더라도 괜찮다. 나는 따뜻한 엄마의 목소리 한 모금이 고프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주는 체온에 허기가 진다. 마늘냄새속의 사랑을 읽을 수 있는 서른여덟 애 엄마지만 여전히 코 끗 찡한 그 냄새를 들이키면 연기처럼 매캐해서 가슴이 콕콕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