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배우자와 외국인 배우자사이의 혼인신고 및 결혼비자 발급 방식은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1. 외국인배우자 국가에서 혼인신고 후, 한국인배우자 국가, 즉 한국에서 혼인신고 --> 결혼비자
2. 한국인배우자 국가, 한국에서 혼인신고 후, 외국인배우자 국가에서 혼인신고 --> 결혼비자
2번이 수월하다고 하나, 그건 배우자와 함께 있을 경우이고
나처럼 비자 문제로 결혼할 상대가 이미 본국으로 출국한 이후면
배우자가 있는 국가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흡수하고 정리한 후, 과감히 비행기에 몸을 싣고 중국 선양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아무 할 일 없이 낮에는 휴대폰 그리고 밤에는 술로 보내는 어두운 현실에서 '탈출'--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나의 감정을 이입해서 느낀 그의 처지--시켜주기 위해 그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인 결혼비자 발급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러 온다는 사실을.. 그것은 생각해 보면 우리의 결혼인 것이다.
영원히 미래를 함께 할 사람과의 가족으로서의 첫 시작점
그의 가족관계 증명서 상에 내 이름이 올라갈 것이고, 그리고 내 이름은 '땡 아무개의 배우자'로 표기될 것임을
그가 떠나면서 곧 돌아오겠다는 시점은 초겨울이었는데, 어느덧 2월 한겨울이 되었고,
한국의 서울보다 더 뼈가 아리도록 춥고,
이따금 느낄 수 있는 오후 2-3시경의 따뜻한 한겨울의 햇살조차 느낄 수 없이
어두운 회색빛 빌딩색깔들 그 속에서 빨간색 슬로건들로 온통 뒤덮인 차가운 느낌의 2015년도 중국선양으로 가고 있었다.
그를 위해 따뜻한 점퍼를 준비했고,
나는 제법 눈에 보이는 미적인 면을 좋아하는 편이므로 나의 남자 역시 언제나 깨끗하고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벌의 한국에서 유행하는 옷을 구입해, 두툼해진 캐리어를 들고 중국선양국제공항 출국장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빠져나왔다.
두리번두리번
종이에 이름을 적어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옷차림이나 화장법이 본국인들과 다른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인파 속에 난 그를 찾아보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더니, 그는 이제야 출발했으니 곧 도착한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시작되었다.
그의 행보
그는 본인 중심이 아닌 모든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전혀 없었고, 상대방의 기분을 세심하게 파악하려고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남성이었기에,
나는 참고 이해하려고 했고
그러면서 그는 완전한 중국인도 아니었기에 앞으로 그의 그런 성격들은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고쳐질 것이라 믿었다.
마침내 그를 만난 후, 난 그와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두었다는 그의 고향동네 근처 호텔로 출발해서 갔다.
중국은 그래도 대도시내 웬만한 호텔들은 3성급 이상을 찾기도 쉬었고,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 꽤 만족도가 높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얼른 따뜻한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새로 사 온 옷들을 뿌듯하게 선 보이며
그가 그 옷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에
한걸음 더 나아가
혼인신고 하러 가는 내일의 완벽한 극본들까지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호텔 입구
"여기 맞아?
"엉... 여기 맞아
"아니 뭔 호텔이 이래??
.
.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고 난 후, 택시가 우리를 한 시골 동네 길 위에 내려주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삥관'(우리나라 모텔 정도의 급)이라고 적힌 곳을 들어갔고 로비는 온통 물이 뚝뚝 떨어져서 양동이로 받쳐 놓고
로비의 직원들은 세탁을 언제 했는지 알 수 없는 셔츠를 입고 우리를 퉁명스럽게 맞이했고 그러면서 그들은나로부터 1박당 한국돈 인민폐 270위안(한국돈 5만 원)을 받았다.
중국에서 오래 살긴 했지만, 여행을 제외하고는 베이징 시내에서만 살았고
대부분의 생활영역은 나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에서 '나는 중국을 잘 안다'라며 자만하면서 살았던 것인가??
아니면 그는 내가 중국에 오는 게 싫었던 건가??
나를 무시하는 것 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은 기대해 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그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는 남자답게 나의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남자답게...
방문을 열자 객실은 중국담배의 독한 냄새로 찌들어있었고, 침구들은 물먹은 듯 꿉꿉하기가 짝이 없었고
벽에 발라둔 유해로울 것 같은 페인트들은 이미 쩍쩍 갈라진채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에 안 나지만
나는 그에게 난리를 쳤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방에서 1박을 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나는 언제나 그에게 일방적이었고 개난리를 치긴 했지만
결국 그를 이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게 어른들이 항상 말하는 삶의 지혜이자 결과이지 않았던가..
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중국 현지인 남자친구는 처음이었던 만큼, 지금부터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모든 책임과 통솔권을 그에게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중국 유학생활중, 낯선 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고 꽤나 적응하며 살기 위해 그 어린 나이의 난 어쩌면 긴장과 두려움을 항상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보호받는 여자친구.이고 싶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나에게 오늘 저녁친구들과 서로 인사하는 술자리 모임에 가기 전에 한숨을 잔다며 수면을 취했고, 나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그 추운 호텔방에서 이불이 아닌 그에게 선물로 사 온 두꺼운 점퍼를 덮고 억지로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투숙객이 우리밖에 없을 줄 알았던 그 호텔의 그날밤
하필 옆방에는 또 다른 행복한 남녀 투숙객의 그 시골지역의 도로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미국스러운 개방감 있는 요망한 소음들로 나를괴롭히며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했고,
그는 그런 나를 예민하고 별나다고 취급하더니 이내 또 잠이 들었다.
다음날
택시를 타고 중국선양 시내, 혼인신고 하는 곳으로 갔다.
겉보기에 멀쩡한 건물인데 내부는 닫혀있다.. 어렵사리 국방색 외투를 입고 있는 보안(시큐리티 가드)을 만났고 , 그가 말하길 거기가 아니란다.
그리고 그에게 묻고 물어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 찾아갔다.
간판에 -중국 선양 결혼국-이라는 뭔가 중국 정부기관의 포스에 어울리는 금색 간판에 빨간색 굴림체 간체자의 글씨를 본 그는 갑자기
"잠깐만!! 이렇게 결혼을 한다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며 내가 중국 방문 중인 1박 2일 동안 처음으로 가장 많은 말을 나에게 했다.
가끔 그래도 술을 마시면 농담을 곧잘 하고 제법 대범해지는 그였기에,
갑자기 긴장이 되나 보다..농담을 다 하고..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갑자기 건물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도망치고 있었다.
그 관공서로부터인지 나에게로부터인지 모를말큼
큰 키의 그는 너무나 빨랐고
중국 선양시내는 승용차, 버스 그리고 자전거로 뒤덮여, 그곳 지리적 상황을 모르는
난 도저히 그를 따라서 쫓아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냥 그곳에 서서
오히려 냉정함을 찾아 그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또 혼자만의 로맨틱한 착각 속에 나를 빠뜨렸다.
'그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은 있구나
다만 남자로서 느끼게 되는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두려웠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의 나의 미친 착각, 망상 그리고 상상력 수준이었다면
나는 차라리 그에 대한 집착을 벗고
브런치에서 글을 써 내려갔더라면 큰 대작의 판타지소설 작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통화 중 들려오는 답답함 속에
나는 유창한 서울억양의 어투와 문장력으로 그를 설득했다.
'네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술만 마실게 아니라, 빨리 한국에 와서 우리가 계약한 집에서 멋지게 사는 거야.
너 어차피 중국어관광통역사 일도 적절한 비자신분이 돼야 할 수 있는 거라면서?? 그렇지??
타임머신을 타고 이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가 나로부터 도망친 순간부터, 나는 영원히 그를 잊었어야 했다.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
무엇을 시작해도 늦지 않았던 그 젊은 나이에 인생 과제와 같던 결혼이라는 숙제를 굳이 그렇게 해서라도
내 인생의 한구석에 채워 넣어야 했던 건지
나 자신부터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살거나 존중하면서 살 '인격 갖추기' 연습은커녕,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는데..왜..
30대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넌 도대체 뭐가 결핍이었니??라고..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모두 안 나지만
그는 다시 아까의 그 장소의 건물로 돌아왔고, 난 마치 집 나간 중학생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처럼
그냥 조용히 그를 데리고 우리가 결혼할 중국 정부의 관공서로 들어섰다.
우리 커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곳은 그래도 많은 남녀들에게 인생의 첫 출발점을 하게 국가적으로 인정해 주는 공식기관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런지 그곳 직원들은 다른 중국의 관공서 직원들과는 다르게 사뭇 친절했고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덕분에 그의 긴장도 어느덧 풀어진듯보였다.
그 직원들의 친절함 속에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관공서 또는 중국관공서 직원들은 나에게 혼인신고 비용으로 290위안(55000원)을 내라고 했고
그건 나의 뇌키백과 속에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백년회로를 서약하러 간 곳에서 뭔 개소리냐며 숨겨왔던 나의 성격과 중국어를 발휘할 수 없었기에
난 그냥 그들이 찍어준 빨간색 배경을 뒤로한 지극히 내 얼굴이 그대로 정직하게 또는 못생기게 왜곡되어 나온 혼인신고 촬영 사진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돈을 내고 중국 선양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 이후도
결혼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모든 서류처리와 그 과정들은 '나, 민간 야매행정사의 지휘하에 순탄히 이루어졌고,
그와의 연애 시절 찍은 사진들, 앞으로 입주하게 될 깨끗하게 신축된 빌라의 내부 모습들
그리고 매매계약서
최종적으로 영사관님께
그를 데리고 와야 하는 나의 간절함들을 써 내려간 '존경하는 영사관님'으로 시작하는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