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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bong Jan 25. 2023

그림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

 몇년 전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만으로 49세였다. ㅋㅋ) 그림책 일러스트 학원에 등록했었다. 동화책이 나온 것으로 만족하지 못 하고 그림책에 도전장을 낸 용감함과 무모함이라니. 

 "동화 작가들은 한 장은 그려도 한 권은 못 그리더라."는 어느 출판사 사장님의 말씀대로 나는 2년 동안 두 권의 더미북을 만들었지만 출판사의 간택은 받지 못 했다.  목표한 바를 어떻게든 이루어 내고야 말던 나로서는 엄청난 좌절감을 맛보았지만 실력이 욕심을 따라가지 못 하는 걸 어떡하나. 남의 그림을 베낄 수는 있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일괸성 있게 끝까지 밀고 나갈 힘과,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그림으로 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다시 딴길로 새고 말았다. 그 사이 글도 제대로 못 쓰고 공예 학원을 전전하다가 금세 시들해지곤했다.  시작하고 끝을 못 보는 일이 잦아지니 아무래도 성인 ADHD검사를 받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든다.  

 생각해 보면 학원에 다니던 2년 동안 얻은 것도 많았다.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왕언니란 호칭으로 불리며 여러 경험들을 했으니 말이다. 판화도 배우고 포토샵도 어깨너머로 조금 배우고 접해보지 못 했던 여러 미술 재료들을 다루며 평소에 그리던 그림에 변화도 조금 생겼다. 유화를 배울 당시에 사진처럼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그리는 화풍을 고수했었는데 일러스트를 배운 후부터는 어느정도 풀어서 그릴 줄도 알게되었다. 

그런데 그때 부러워만 하고 배우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던 작가가 있었는데 물감이랑 붓 하나 없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컴퓨터와 태블릿이 일체형으로 와콤 신티크 태블릿도 그때 처음 알게되었는데 컴맹을 겨우 벗어난 내가, 포토샵도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더미북을 겨우 완성할 수 있었던 내가 과연 신티크를 다룰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었다. 그후로 전시회 구경도 같이 가고 서로의 작업실도 오가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생이 아이패드에 그림 그릴 것을 권했는데 그 역시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힘들어하던 작년 겨울 우연히 이모티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써본 적도 없고 게임기로 쓰던 삼성 태블릿 뿐이었는데 강사님이 아이패드랑 삼성 패드 모두에게 적용가능한 어플(이비스 페인트X)로 아주 쉽게 가르쳐 주었다. 4주 수업 후에 라인에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고 그림을 그렸다. 이모티콘 비스무레하게 그려지는 것도 신기했고, 두 컷이나 세 컷짜리 그림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신기했다. 4주차에는 완성을 못 했지만 나중에 완성해서 유료 판매로 등록도 해보았고, 작은 성공을 함으로써 자신감도 생겼다.

 필 받은  김에 작은 아이의 아이패드를 빌려서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깔았다. 돈 주고 배우는 게 빠르겠지만 독학을 해보겠다고 유튜브를 틀어놓고 낑낑대기를 며칠 째. 사진을 불러와서 베껴 보기도 하고, 핀터레스트에서 따 온 캐릭터를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마침내 조카의 비숑 강아지를 그리기에 이르렀다. 2017년부터 하고 싶었던 물감과 붓 없이 컴으로(또는 패드로) 그림 그리기라는 미션을 드디어 해낸 거다. 

 우와, 박수우우~~~!!! 

 아직은 만 나이로 56세인 나에게 셀프 칭찬을 보낸다.  이제 그림책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마구마구 샘솟지만, 그림책으로 만들 이야기가 없다는 자각이 뒷골을 때린다. 성급하게 욕심 내지 말고 한 발짝씩,  환갑 전에 그림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쌓아야 겠다.            

핀터레스트에 있는 사진을 따라 그려본 빛과 그림자
유튜브를 보고 따라 그려본 빛과 그림자 그림 
뭐가 잘못 된 건지 그림자를 표현해보려고 채도를 낮추자 이상해져버린 그림. 분위기가 좋아서 안 지우고 그냥 두었다. ㅎ
 생애 첫 이모티콘 ^^
조카네 강아지 비숑, 애교덩어리라 또 만나고 싶다.
핀터레스트에서 데려와 색깔을 입혀 본 일러스트
핀터레스트에 있던 이미지를 따라 그려보았다. 브러쉬 사용이 서툴러서  원작이랑 많이 다르다.  공룡 이야기로 그림책 만들고 싶어지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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