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몰될 수 없는 현재를 살고 싶다
사고는 주관하고 있으나
감정은 주관하고 있지 못하다
소망은 그래서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다
최근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선택’. 과거에 대한 선택, 현재에 대한 선택, 미래에 대한, 그리고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선택’. 어느 새부터 인가 선택이 결여된 삶을 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결정을 많이 내렸고, 그렇게 행동에 옮겨오는 때인데도, 나는 자기 결정을 상실하고 있었다. 인생의 파도에 나를 맡긴 채.
함몰될 수 없는 현재란 서술할 수 있는 현재. 다양한 가능성을 상실할 수 있는 현재. 강력한 아군으로서의 문학을 손에 넣고 표현에 책임을 지는 현재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들여 고찰을 했다고 해서, 내가 인생의 파도에 맞서 눈을 부릅뜨고 자기 결정할 수 있는 자가 되었는가. 그럴 리가 있나. 여전히 고찰 없이 – 고의적인 고찰의 부재다 - 하기 싫은 일도 하며, 보고 싶지 않은 ‘주호민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월드컵‘을 자동재생으로 4번 정도 – 나도 모르게 - 강제 감상하며, 의무적으로 재테크 서적을 뒤적인다.
언제쯤 나는 복종하지 않는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은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에둘러 가볼까. 이 인생의 내리막을 천천히 때로는 자기 결정의 부재에도 울지 않고 내려가고 싶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을 읽으며.
최근 몇 달간 이 얇고 강렬한 붉은색의 책에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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