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이야기
이름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유대인의 이야기다. 꽤 건장한 금발 청년이었으며,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장학금을 받고 의학교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오 년간의 과정을 다니면서 탈 수 있는 상은 모조리 탔다. 나중에는 병원에 상주하는 내외과 겸직 의사가 되었다. 모두가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마침내 그는 병원의 정식 의사로 뽑혔고 그에 따라 장래도 보장되었다. 인간사가 예측대로만 된다면, 그가 의학계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게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명예와 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새 직책을 맡기에 앞서 잠시 휴가를 원했다. 워낙 가진 재산이 없는 사람이라 휴가 여행을 위해 화물선의 의사가 되었다. 이 화물선은 보통 때 의사를 두지 않았지만, 병원의 원로 외과 의사 한 사람이 그 정기선의 중역을 알고 있어, 아브라함을 특별히 채용했던 것이다.
그 뒤 몇 주일이 지났을까, 병원 당국은 그로부터 사직서를 받았다. 모두가 탐내고 있던 그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놀랐고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누군가가 뜻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주위 사람들은 아주 망측한 동기를 찾아내는 법이다. 하지만 마침 아브라함의 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일은 곧 잊히고 말았다. 그 뒤로 아무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십 년쯤 지난 뒤였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알렉산드리아행 항구에 상륙할 무렵 허름한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였는데 모자를 벗을 때 보니 머리가 잔뜩 벗겨진 대머리였다.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퍼뜩 기억이 났다.
“아브라함!” 그를 불렀다.
의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고 그는 이내 알아보고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저녁에 다시 만났을 때 여기서 만나 정말 놀랐다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아주 소박한 일이었고 형편도 궁색해 보였다. 이윽고 그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아침, 화물선이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했다. 그는 갑판 위에서 아침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도시와 부두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의 토박이들, 수단에서 온 흑인들, 시끌벅적한 그리스인과 이탈리아인 무리, 회교도 모자를 쓴 엄숙한 터키인들, 햇빛과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천둥 벼락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건 하나의 계시와 같았네, 하고 고쳐 말했다. 무엇인가가 가슴을 튀는 것 같더니 돌연 어떤 환희의 느낌, 벅찬 자유의 느낌이 가득 차오르더라는 것이었다. 내 집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낀 그는 그 자리에서 단 한 순간에, 나머지 인생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보내겠노라고 결심하고 말았다고 했다.
“선장은 자네를 영락없이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겠군.”이라며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네.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기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강한 충동이 그렇게 한 거지. 그래서 말일세. 마음이 짚이는 곳으로 곧장 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부 관리로 들어갔고, 지금까지 그 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아니, 단 한 번도 없었네. 먹고살 만큼은 버니까. 난 만족일세.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지 않겠어. 지금까지 아주 잘 살아왔네.”
이튿날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 그리고 아브라함에 대해선 얼마 전까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다시 생각났던 것은 얼마 전 의사로 일하는 또 하나의 옛 친구 알렉 카마이클과 식사를 같이하면서였다. 그는 잠시 휴가를 얻어 잉글랜드에 와 있었다. 옛정을 기리기 위해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그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내가 좋다고 하자, 그는 우리끼리만 오붓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딴 사람은 부르지 말자고 했다. 그는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금실을 넣어 짠 옷을 입은 날씬하고 예쁜 여자였는데 자리를 떠나자 나는 웃으며 그에게 의학생 시절에 비하면 처지가 좋아졌노라고 말했다.
알렉 카마이클은 대여섯 개 병원에서 직무를 맡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 년에 만 파운드는 족히 벌 것이다. 기사 작위만 해도 그가 앞으로 줄줄이 얻을 갖가지 명예의 첫 번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야. 이게 순전히 한 가지 행운 덕분이었다는 점이야.”
“그건 무슨 소린가?”
“그게 말이지. 자네 아브라함 생각나나? 장래가 유망했던 그 친구 말일세. 학생 시절에 나는 무슨 일에서나 번번이 그 친구에게 졌지. 나하고 같이 경쟁이 붙은 상이나 장학금은 모조리 그 친구가 차지했네. 나는 늘 그 친구 뒷전에서 북이나 친 셈이었어. 그 친구가 병원에 그냥 눌러있었더라면 아마 지금 내 자리에는 그 친구가 앉아 있을 걸세. 그 친구, 외과에서는 천재였으니까. 그 친구하고 붙으면 아무도 승산이 없었지. 그 친구가 성 토머스 병원의 서무 의사 발령을 받았을 때, 나는 정식 의사 자리가 영 가망이 없었네. 천상 일반 개업의나 할 수밖에 없었지. 자네도 알잖나. 일반 개업의가 되어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런데 마침 아브라함이 도중에 그만두는 바람에 그 자리가 내게 돌아왔단 말이야. 나에게는 그게 기회가 되었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운이 좋았던 거지. 아브라함에게는 좀 별스러운 데가 있었던 것 같아. 그 가엾은 친구, 이제 완전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지.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건국 관리인가 뭔가 하는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네. 들리는 말로는 지지리도 못나고 늙은 그리스 여자하고 살면서 병치레하는 애들을 대여섯이나 거느리고 있다더군. 그러니 말일세,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닌가 봐. 결기가 중요하지. 아브라함에게는 결기가 없었어.”
결기가 없었다? 다른 길의 삶에서 더욱 강렬한 의미를 발견하고, 반 시간의 숙고 끝에 출세가 보장된 길을 내동댕이치자면 아무래도 적잖은 결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갑작스러운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결기만이 아닌 더욱 큰 인격이 필요했을 테고.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렉 카마이클은 생각에 잠기며 말을 이었다.
“그야 아브라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척한다면, 그건 물론 나로서는 위선이겠지. 결국 내가 덕을 보았으니까.” 그는 피우고 있던 기다란 담배 연기를 호사스럽게 내뿜었다. “하지만 내가 덕을 보지만 않았다면 그런 식의 인생 낭비를 아주 안타깝게 생각했을 거야.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 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 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