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일요일의 새벽
일요일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루틴이 있는데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잠이 오질 않아 말없이 눈만 감았다. 발 밑에서는 반려견이 곤히 잠들고 있었고 두 발목은 이불 밖으로 나와있었다. 그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틈 타 소름을 끼치기도 했다.
휴대폰을 열어서 새벽에 치렀던 맨시티 대 토트넘 경기결과를 보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맨시티 홈 그라운드였고 실력이나 선수단을 봤을 때도 토트넘은 잘해봐야 비기겠지 하고 잤는데 무려 4대0으로 토트넘이 이긴 것이다. 새벽 두 시 경기에다가 리버풀 팬으로서 토트넘이 최소 비겨주기만을 바라고 잠들었었는데 고마운 결과가 된 셈이다. 곤히 자고 있던 반려견이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잠자기 더 편한 곳을 찾아가고 나서야 나와있던 발목을 덮었다. 목 뒤가 갑자기 가렵기 시작하면서 얼마 전부터 자주 가려웠던 안면도 가렵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해서 잠이 달아나 버렸다. 키보드를 챙긴 다음 침대에 누워 페이퍼를 열었다.
해외축구를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봤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도 같이 다니고 옆 동네에 살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방학만 되면 집에 초대해 같이 게임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거의 매일을 함께 보냈다. 그 친구는 축구를 좋아했으며 학교 내 축구부에서 뛸 정도로 잘했다. 오락실에서의 위닝일레븐을 하면서부터 해외축구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는 유독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했고 베컴 특유의 프리킥을 따라 했으며 베컴이 신었던 축구화도 같은 제품으로 신고 뛰고는 했다. 또 겨우 축구공 하나 챙겨서 경사가 가파르고 초등학생 수준으로는 아주 힘겨운 오르막길을 타고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 운동장에 둘이서 공을 차면서 놀기도 했다. 그때 당시 친구가 알려준 데이비드 베컴과 위닝일레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해외축구를 알게 되었고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이 발단이 되었고 그 친구와는 반대로 나는 스티븐 제라드와 마이클 오웬을 알기 시작하고 좋아하게 되었으며 해외축구에 점점 더 재미를 더해갔다. 그때는 이 두 선수가 축구를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특별활동이 있었다. 다양한 부서 중에서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선착순이거나 인원이 많아지면 매번 반에서 가위바위보를 한다거나 잘한다고 소문이 나야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축구부였다. 지금도 축구를 못하는 편이지만 그 당시 나는 축구를 못했고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방과 후에 축구부 연습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끝날 때까지 구경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어쩌다 인원이 맞지 않으면 지도 선생님이 나를 보시고 운동장에 들어와 뛰어라고 할 때면 그만큼 기분 좋았던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고 난 뒤 요즘의 삶 속에서 기분 좋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렇게 사고 싶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없으며, 책이랑 문구를 잔뜩 사러 가고 싶다 가도 사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들이 쌓여 있으며, 대식가로 소문나 있지만 식욕보다는 필요하면 먹고 안 먹으면 말고라는 식으로 지내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엄청나게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없다. 요즘 계속 바쁘다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내뱉으며 살았다. 어제저녁 이번 주 유일하게 엄마와 저녁을 먹었고 함께 숯불 치킨을 시켜서 먹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을 때면 표현이 풍부해지며 말수가 많아진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한테 줄 수 있는 어떠한 것들이 있다는 것과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저런 생각과 상황으로 여유가 없었던 터였는데 그 순간 느낀 여유가 나에게도 필요했던 것 같다.
토트넘이 맨시티를 이겨줘서 승점과 득실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에 기분 좋았고, 어렴풋이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으킨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