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모 Dec 09. 2024

무기력이라는 감옥

 요 며칠 생각도 안 했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생각 없이 지냈다. 정신을 차리면 주말이고 다시 출근하고 있고 출근해서 집에 오면 가만히 누워서 유튜브 틀어 놓고 보다가 잠들었다. 얼마 전에는 좀 지났지만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상영하고 최종화까지 나온 흑백요리사를 몰아서 봤다. 시간이 너무 잘 갔다. 시간을 삭제하려면 이만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까 이불에서 나오기가 싫다. 산책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산책은 보통 생각을 하거나 운동삼아 하는 루틴 중 하나다.


 지난주에는 좋아하지도 않고 가까이하지도 않는 술을 꽤 마셨다. 한 번은 회식 때문이었다. 또 한 번은 10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술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물가 때문에 안주랑 술값도 비싸서 돈도 많이 나가고, 몸에도 헤로우면서 다음 날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이 헤로운 술로 삶의 즐거움과 동시에 덫없음을 느끼기도 했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좋아하던 책도 요즘 안 읽고, 글도 안 쓰고, 음악도 듣지 않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상황들이 있지만 의욕이 없고 입맛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평소답지 않은 내 모습을 문득 본 것이다. 에너지도 없고, 이것저것들이 귀찮고 성기시기도 하고, 감정적일 때도 있고, 할 일이나 해야 할 것들은 미루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


 주말이 지난 오늘 퇴근하고 저녁을 챙겨 먹었으며, 주어진 일에 대해서 대비하고,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아이패드도 챙겨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면 책도 좀 읽을 것이다. 기도해야 할 것들도 있어 기도도 하고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마인드셋도 할 것이다. 원하는 것들과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모습들을 다시 생각하고 그려보면서 실현하기 위해 생각하고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춰보려 한다.


 오랜만에 느끼고 찾아온 무기력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무기력하면 모든 방면에서 패배하고 패배자 의식을 가지고 상황과 남 탓만 하게 된다. 감정적이게 되고 예민해진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거칠어진다. 그리고 다른 것들로 채우려 하고 위안을 삼으려 한다. 무기력이라는 감옥이 이렇게 무섭다. 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 무감각해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사는 대로 생각하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그 감옥에 갇혀 살다 보니 평소보다 돈도 더 많이 썼으며, 피부도 안 좋아지고, 특히나 남는 게 없다. 사람답게 못 살게 한다. 그저 먹고 마시고 싸고 도파민에 찌들고 만다. 그러나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회피하도록 만들며, 별 일 아닌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하며, 나답지 않게 살도록 인도하고 만드는 것이 바로 무기력이다. 그래서 무기력은 열쇠가 눈앞에 있어도 쉽게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