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9년도 11월에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 와서 함께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의류 벤더 회사에서 일하던 아내,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고 강원도 양양으로 떠났습니다.
디지털노마드는 컴퓨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여행을 하며 일하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디지털노마드를 꿈꾸게 된 과정과 살아남기 위한 도전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지금 또는 미래의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는 분들이 많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부부가 함께 디지털노마드가 된다면 더욱 효율적이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노마드 부부가 되어보자고?
디지털노마드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내를 통해서입니다.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와 디지털이 합쳐진 새로운 단어입니다. 노트북 하나로 여행을 다니며 일한다는 것은 누구나 꿈일 것입니다. 어쩌면 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디지털노마드로 살아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반대했습니다.
제가 반대한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디지털노마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부자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부자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월 1천만 원이 넘는 수익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외식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디지털노마드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실현 불가능성입니다. 전 이성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는 디지털노마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개월간 유럽여행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 오기 전 아내와 3개월간 유럽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중 약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700km를 아내와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 가감 없이 토론했고 때로는 큰소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포르투, 베를린을 여행하는 여정이 끝날 무렵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내가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미세먼지였습니다. 인천에 살면서 매일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자연과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었고 그곳에서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유럽여행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좋은 기회로 강원도 양양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옆집에 살고 계십니다. 2019년 11월 LH 전세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제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자 더 이상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강원도 장거리 이사비용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퇴직금은 이사비용에 사용했습니다. 한 순간에 출근하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들어오는 수입이 없게 되었습니다. 집 안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아내와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