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태어나 부모님께 처음 언어를 접하고 글을 배우게 된다. 다른 어떤 인지적 교육보다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서 중요한 의사소통이 되는 수단이기에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느 날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을 읽게 되었고 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읽고 말할 줄 알았기에 내겐 당연한 것들 중 하나였지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 난 할머니는 학교는커녕 글공부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귀동냥으로 간간히 글공부를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옛날에는 본인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 말고는 글을 알지 못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외할머니의 글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독학을 하셔서 지금은 쉬운 글들은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해지셨다.
할머니만의 독학 방법으로는 평소 즐겨보시는 불교 방송을 보며 독경하는 스님의 목소리와 경전 책을 번갈아보며 받아 적고
읽으시기를 반복하여 한글을 깨쳤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에는 가슴이 무겁게 찡해져 왔다.
먹고사는 것이 바빠 글공부는 사치였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떨구어졌다. 할머니가 새삼 더 존경스럽기도 했고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일상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중에
감사할 일들은 참 많다. 하지만 그 감사함을 다른 이의 삶과 관점으로 인해 알아차리는 나 자신을 보면 나는 아직 더 갈 길이 멀다 싶다.
평소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로서는 글로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하여 써내려 가는 것이 참 익숙하다.
아마 이런 내가 글조차 읽고 쓰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상상만으로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지금 내 글은 나의 생각을 털어내는 표현과 표출의 방식으로 쓰이고 있지만 할머니에게는 자식과 손자 손녀의 앞 날을 위한
기도문을 적는데 쓰이고 있다. 매일 밤 자식과 손자 손녀의 이름과 행복과 기원을 담은 문장을 적으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다시금 외할머니의 사랑에도 감사한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