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피셜에 따르면 저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게 더럽게 많아 빌 게이츠와 결혼해도 만족 못할 사람이고, 제 남편은 코로나에게 '셰프로서 호주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빼앗긴 사람으로서 결혼 후 한 동안은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릴없이 휩쓸려 다니며 절망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어김없이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산책길에 나선 저희 부부는 익숙한 공원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날 우리 부부의 대화에서 가장 빈번히 나온 단어는 '취직'이었는데, 이것은 요즘 남편이 한창 바쁘게 면접을 보러 다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곧 셰프 경력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해외 유학파에 사장과 주방장을 모두 해봤던 화려한 남편의 경력은 소소하게 주말에 쉬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의 소망에 비하면 너무나도 거창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런저런 곳에서 면접 제의가 오고, 원하는 곳은 지원도 해가며 바쁜 면접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남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하루 루틴 중 자질구레하지만 몹시도 중요한 루틴인 '집안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습니다. 밖에서 일을 볼 때도 최소 제 퇴근 시간 2시간 전에는 집으로 후다닥 귀가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퇴근을 마친 제가 어질러진 집을 보면 언짢아한다는 것을 남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그리 강하게 주장할 있는 권리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현재) 가장으로서 조금의 권위를 부려보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쉽게 말해 유세를 떠는 거죠.
아무튼 다시 공원 벤치로 돌아오면, 남편에게 제안을 주는 상당 수의 회사는 모두 외국에 기반을 둔 곳이었습니다. 한국에 사무실이 있는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 직접 해외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그중에서는 '우와' 소리 날 만큼 거창한 호텔 리조트'들'도 있었고, 또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당연히 구미가 엄청나게 당겨했지만 사실 가족을 가장 우선 시 하는 그의 가치관에 '기러기 남편'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포기해야만 하는 일자리였죠.
*
결혼 3년 동안 20대의 청춘을 바친 외국 생활을 타의적으로 종료해야만 했던 남편의 내적갈등을 보고만 있기가 안타까웠습니다. 어떤 때는 저 또한 힘들기도 했고요. 이제 시작되는 결혼생활에서 마음을 다 잡지 못하는 남편을 대하는 것은 아내인 저로서도 많은 감정이 소비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 남편에게 해외 취업은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자연스러운 커리어의 흐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고 싶긴 하지. 근데 어떻게 가. 말도 안 되지.'
남편의 시무룩한 목소리와 그에 걸맞은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러던 찰나, 저에게 기가 막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50대의 우리 인생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의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 50대가 집중 조명된 자기 계발서가 많을까?
남편이 말한 대로 요즘은 100세 시대니까 50대 또한 더 이상 많은 나이가 아니다,라는 것이 우선 기본적으로 깔린 명제 같고 그 위에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쌓인 시대 풍토를 살펴보자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80세 할머니가 영어공부를 하는 것' '애가 둘인 40대인 친척언니가 공무원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해 얼마 전 첫 근무를 시작했다는 것' '40대에 아이를 낳아 열심히 육아 중인 엄마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 '아줌마 인플루언서의 벌이가 이미 남편을 뛰어넘고도 남았다는 것' 등등이 있을 수 있겠네요.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지금 저에게 해온다면 0.1초 만에 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근데 냉정히 봐서 이 뒤늦은 수의사라는 꿈을 제가 이룰 수 있는 확률이 클까요? 저를 아는 제 입장에서는 그냥 불가능하다고 봐야 됩니다.
'나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조언을 삶에 적용했다는 점은 좋게 봐줄 만 하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평을 할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을 생각하면 결국 우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어느 봄날 가볍게 날아온 이 우울감은 잘 다니고 있던 회사(이제 갓 첫 월급을 받은)를 때려치우고 싶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이의 혜안이 발동돼 불상사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흙바닥에 굳건히 붙어 있는 민들레 홀씨처럼, 이 우울감은 제 마음 밑바닥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있었고, 그러던 찰나 저는 우연히 '세바시' 강연을 듣게 됩니다. 퇴근길이었고 여전히 짜증 나고 우울한 하루를 보낸 뒤였습니다.
"학창 시절에 하는 공부는 모두 목표가 있는 공부였습니다. 대학, 취업, 자격증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하지만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을 찾고 회사를 다니며 시작하게 되는 공부는,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목적 없이 천천히 하는 것. 30대 즈음에 시작해 50대 정도에 빛을 발하는 그런 공부 말입니다."
장차 위대해질 씨앗의 발아가 50대에 될 수가 있다고? 아 그래서 '중년'을 타깃으로 한 자기 계발서가 많은 거구나. 오....
정말 이 말을 듣자마자 전 시야가 환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물리적인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간적이지만 진정한 해방이 제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이날 저녁, 공원에서 전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결정과 선택을 15년 뒤 해외생활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럼 오빠도 외국생활에 대한 미련도 해소될 거고, 나도 그렇고. 50대도 진짜 젊잖아. 주변에 봐봐. 다 청춘들이시잖아. 우리 이모 60대인데 나보다 더 잘 다녀. 체력 끄떡없어. 하고 싶은 취미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나는 늙어도 여유로운 마음, 그거 하나는 지킬거야. 하고 싶은 인생이 끝없이 샘솟는 인생, 그거 내 목표야!"
한 2분 정도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오빠가 말했어요.
"맞아. 더 이상 50대가 아줌마 아저씨로 치부되는 시대는 끝났지. 그래! 그럼 난 무조건 큰 기업에 들어갈게. 나중에 해외취업할 때 플러스가 될 수 있는 곳으로!"
"그래, 그럼 난 노매드로 돈을 벌 수 있게 노력할게. 오예!"
"그전까지 우리 집 사고, 애들(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에게 충실하자. 애들 떠나면 우리도 떠나자."
역마살이 지나친 우리 부부는 항상 이렇게 '떠난다'는 범주의 카테고리를 이야기할 때면 죽이 척척 맞습니다.
얼마나 가치 있고 뜻이 깊었던 대화였는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거절도, 무시도 없었습니다. 오직 밝은 미래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
아무튼 이렇게 한 동안 저희 부부의 인생계획은 '해외'로 맞춰질 것 같습니다.
바뀌면 바뀌는 거고, 크게 상관은 없죠. 지금 이 순간 마음이 편하면 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