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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Dec 06. 2021

구두 대신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다시 구두를 꺼내며

10월의 어느 멋진 날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경기 때문인지 한동안 지인 결혼식이 없던 참이었다. 날씨도 좋고 오랜만의 행사(?)건이라 한껏 멋을 부리기로 했다. 백만 년 만에 헤어 컬도 말고 속눈썹도 확 올리고 잘 다려진 원피스도 입고 에코백 대신 핸드백을 챙겨 신나게 나가려는데, 신발장을 열고 멈춰 서고 말았다.  


글쎄 앞코에 찔리면 아플 것 같은 유행 지난 구두와 뒷굽이 나간 채로 방치된 빨간 구두, 제일 말랐던 시절에 산 메리제인 슈즈(지금은 안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보기만 해도 발이 시린 슬링백, 기본 검정 구두와 검정 워커만 덩그러니 있는 거다. 이중에선 뭘 신어도 후회한다. 아파서 후회하거나 착장에 안 어울려서 후회하거나. 아무튼 구두를 신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신발장에 어떤 구두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망설일 시간조차 사치였다. 얼른 구두를 선택해야 했다. 운동화로 바꿔 신는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나는 이미 풀셋팅한 상태였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검정 구두를 골랐다. 구두를 신고 역까지 걸어가는 길 5분 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내 몸은 6센티 굽도 감당하기에 역부족인가. 초역세권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던 우리 집에서 역이 멀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평소엔 잘하지도 않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가, 잽싸게 자리를 낚아채 앉았다가, 신발을 잠깐 벗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중에 드디어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행복해하는 아름다운 신부의 얼굴을 보며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하지만 스몰 웨딩이라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게 문제였다. 계속 서 있다 보니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밥도 안 먹고 달려 나왔다. 


돌아오는 길엔 지하철 상가에서 슬리퍼라도 하나 살까 고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슬리퍼는 팔지 않았다. 후배의 결혼식은 오래전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던 중지 발가락과 뒤꿈치의 고통이 현실 세계로 떠오른 날이었다. 
 

어지간한 구두와는 잘 맞지 않는 내 발. 키에 비해 크고 못생긴 데다가 발가락이 손가락 수준으로 길다. 덕분에 여성스럽게 앞코가 짧은 구두엔 발가락이 다 안 들어간다. 발가락 반 마디가 훤히 보여서 꼭 구두에 발가락을 구겨 넣은 모양새가 된다. 발볼은 또 어떻고. 발볼 넓힘 옵션을 선택할 수 없는 구두를 신으면 발바닥과 발가락이 억지로 모아지면서 약지 발가락의 발톱이 중지 발가락을 찌르기 일쑤였다. 그런 이유로 새 구두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발가락과 발뒤꿈치 흉터가 제법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만 받으면 새로 나온 예쁜 구두를 보러 들락거렸다. 이 착장엔 이 구두다, 싶으면 샀다. 뭔가 새롭게 예쁘다 싶으면 또 샀다. 발이 좀 덜 아프다고 느껴지면 당연히 샀다. 분명 살 때는 안 아팠는데 신다 보니 아픈 아이러니한 구두도 있었다. 착장의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는 구두가 좋았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출근하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좋았다. 딱 기분 좋을 만큼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일터로 나가고, 그 대가로 받아오는 월급으로 다시 구두를 사고, 다시 멋지고 당당한 척을 하게 해 줄 구두를 신는 생활을 꽤 오래 ‘반복’했다. 발가락의 고통보다 멋진 삶에 대한 패기와 욕심이 컸던 시절이었다. 반복된 그 생활은 스스로에게 ‘나는 잘 살고 있다 멋지게 살고 있다’는 주문을 반복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예쁜 구두를 좋아했는데 어쩌다 보니 구두와 멀어졌다. 30대 초반 번아웃을 계기로 퇴사 후 혼자 떠난 유럽 배낭여행이 계기였다. 많이 걸을 것을 대비해 내 발에 제일 잘 맞는 운동화를 찾아 여러 번 시착하고 구매했었다. 운동화로 만난 세상은 참 편아-안했다. 이후 임신, 출산, 육아휴직에 이어진 퇴사와 프리랜서로서의 독립, 코로나의 비대면 시대…. 꼭 구두를 신어야 할 이유도 점점 줄어들었다. 망아지 같은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구두는 영면에 들어간 듯했다. 결정적으로 구두를 길들이며 못생긴 발에 못생긴 상처를 내는 과정을 굳이 또 겪게 하고 싶진 않았다. 
 
후배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 솔직히 지하철역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평소와 달리 멋있어 보이긴 했다. 또각거리며 일터를 누비던 때가 떠올라서 웃음도 났다. 마음에 들면 어떤 구두에도 발을 끼워 넣고 다녔던 그 시절이여. 편안하고 자유로운 편에 마음이 더 가는 지금, 그때의 귀여운 마음이 그리울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다. 운동화를 신고 나의 세상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을 벗어나 더 많은 곳에 갈 수 있고 더 오래 걸을 수 있고 더 오래  뛸 수 있다. 망아지 아들을 잡으러 산으로 들로 뛰어다닐 수 있고 양화대교를 걸어 남편을 보러 갈 수 있으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업실에도 거뜬히 걸어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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