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칠호 Dec 11. 2022

워킹맘이 지어야 하는 표정

어렵다 어려워 워킹맘

워킹맘들은 5시 이후에 미팅 어렵잖아. 참석 안 해도 돼요.

파트너사 직원이 말했다. 순간 머리가 머엉-해졌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헷갈렸다. 고맙다고 환하게 웃어야 하나, 아니면 미간을 제대로 찌푸려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입꼬리는 딱 수평을 이루었다.


주요한 자리에 워킹맘을 참석 배제시키는 것을 마치 복리후생처럼 여기며 으스대는 그의 말에 뿔이 났다. 어쩌면 일거리가 하나 줄어드는 것이니 잘된 일인가? 몸이 서너 개라도 부족한 나에게 오히려 꼭 필요한 제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 한편은 안도의 한숨, 또 다른 한편에선 송곳 같은 마음이 솟아올라 자존심을 쿡쿡 찔렀다. 두 감정을 손에 쥐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쁜 걸까, 좋은 걸까? 양가적인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키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절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몸이 편안한 선택지였다.


일을 제대로 다시 시작했을 때 아이가 막 걸음마를 배우고 있었다.

육아휴직-퇴사의 수순을 밟았지만 그래도 일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커리어는 포기할 수 없어서 틈나는 대로 외주를 받기 시작했다. 그 일이 모이고 모여 어느샌가 직장인처럼 출근-퇴근 루틴이 생긴 프리랜서가 되었다. 아이는 이제 세 돌이 되었다. 여전히 손은 많이 간다.


한때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일을 잘 해내고 싶었다. 성취감을 원동력 삼아 평생 이 일로 벌어먹고살고 싶은 소망도 가졌었다. 일을 사랑했다고 보는 게 옳지만 과거형이다. 지금은 그 생각에 조금 변화가 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밥을 먹고 한두 시간 정도 놀다가 씻기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된다. 아이를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들어서 다음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어떤 날은 얼굴도 제대로 못 보기도 한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정확히 하루에 한 번 이상 든다. 아이가 아플 때는 더욱 엄격한 기로에 선다. 나는 프리랜서라 이 정도지만 출퇴근이 엄격한 워킹맘들은 더 할 것이리라.


그러니 이제 나에게 일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 때문에, 사랑은 어렵다.


다만 일터에서 배려를 위장한 일방적인 편견의 말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뭐라고?

고맙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서럽다. 우리는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주어진 시간, 에너지, 비용 안에서.


게다가 남이 굳이 인식시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매번 기로에 선다. 그러니 워킹맘들은 일을 덜해도 된다거나, 더 열심히 하라거나 그런 흑백논리 같은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일에 대한 열정 유무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대체로 안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