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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Dec 11. 2022

음대에 갈 것도 아니지만

신경질적으로 아름다운 피아노 입문기   

“여보 콩쿠르 나가? 음대 갈 거야? 근래 보기 드문 열정이네?” 


남편은 곧 마흔 아줌마의 피아노를 향한 열정이 마냥 신기한가 보다.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도 매일 30분씩 꼭 피아노는 꼭 쳐야 한다는 심정으 2개월 반을 보냈다. 혼자 조용히 방문을 닫고 서재방에 들어가 무음으로 건반만 두드린 적도 있다. 손가락이 굳으면 안 된다면서. 발레리나들이 하루만 쉬어도 다리 찢기가 잘 안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몸은 뚝딱이, 마음만은 피아니스트인 나날을 보내며 드디어

피아노 교본 1권을 마무리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 두 손으로 뚱땅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해 죽겠다. 


요즘 나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피아노 라이프의 신경질적이고 아름답고 흥미로운 면면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1. 못갖춘마디의 존재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피아노를 칠 때 강약, 셈여림은 기본이자 곡의 해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요소다. 못갖춘마디가 있으면 표준 셈여림 생태계에 교란이 온다. 음악의 아버지 외 훌륭하신 작가분들은 지나치게 섬세한 나머지 못갖춘마디까지 만드셔서 많은 초보 음악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다 갖추시지 말이야. 정녕 단순 쉼표로는 안 되었던 걸까? 첫 박부터 힘주어 치길 즐기는 파워 박력녀에게는 매우 힘든 마디다. 내 (손가락) 마디도 힘들다. 

 
2. 같은 음을 반복해서 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리듬과 강약을 찾는다면 일상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고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리듬과 강약을 찾는 게 관건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먼지떨이로 먼지 털듯 손목 스냅을 살리고 셈여림도 표현하고 싶다. 비교적 긴 음은 무거운 징을 치듯이 쿠앙~ 국자로 국 퍼듯이 지앙~ 쳐야 하는데 아직도 짧고 둔탁한 소리를 낸다. 선생님은 피아노 건반이 저 깊은 데 있다고 생각하라는데 참 상상력도 좋으시다. 몇 번을 알려줬는데도 아직이다. 아프리카 제전 곡의 웅장한 북소리 같은 느낌을 제대로 잘 살리고 싶다. 

 
 3. 못해서 혼나니까 더 잘하고 싶다.                            

며칠 전에는 하다 하다 악보에 체크한 필기까지 지적당했다. 애매한 자리의 쉼표에 손을 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작대기 / 로 표시해놨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해놓으면 음이 뚝- 끊을 수 있다며 손을 올리는 형상의 포물선으로 다시 그려주셨다. 매번 고쳐야 할 점이 쏟아져 나오는 피아노 라이프. 이 지적까지 즐거운 나, 비정상인가요? 


4. 그랜드 피아노가 필요하다. 

학원에서 그랜드 피아노의 맛에 빠져버렸는데 아쉽게도 우리 집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없다. 전자피아노로 연습하면 셈여림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 대신 박자나 멜로디에 집중할 수 있어 그건 또 장점이다. 아직 나는 셈여림, 박자, 페달, 멜로디, 곡의 느낌 해석 모두를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초보 음악인이다. 마치 초보운전자가 운전하며 신호도 보고 뒤에 오는 차도 보고 길 건너는 사람도 보고 내비도 보고 옆 사람과 이야기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과 같달까? 전자피아노로 치면 셈여림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속은 편하다. 그러나 왜 하필 귀만 발달했는지. 전자피아노의 가벼운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대회에 나갈 것도 음대에 갈 것도 아니지만 그랜드 피아노가 너무 갖고 싶은 걸 어째.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상을 주는 것도 아닌 일에 요즘 이토록 진심인 적이 있었나 싶다. 이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된 이 취미의 끝은 어디일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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