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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북마을 촌장 Jan 06. 202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계속되는 난쏘공 스토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크리스마스에 향년 8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1978년 조세희 작가의 단편집으로 출간한 소설들을 엮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2022년 7월까지 40여년간 320쇄(약 148만 부)가 판매된 사회비평문학의 명작이다.


대학에 오기 전에도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고 장담했지만 대학교 1학년 가을 쯤에 출간된 이 사회과학 서적 냄새를 짙게 풍기는 난쏘공을 읽고 여태까지 읽은 어떤 소설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깊은 충격에 빠졌다. 오랫동안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나라는 개인의 지평을 넘어 사회라는 지평을 겨우 발견했다고 믿었는데 이 지평에 올라가 발견한 모습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키 작은 난쟁이들이 공을 쏘아대는 황폐한 지평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판자촌에 살고 있는 난장이 가족들의 이야기지만 소설에서 난장이는 유전자 복권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를 총칭한다. 난장이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재능, 머리, 외모, 건강 등 어떤 유전자 복권에도 당첨되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 심지어는 평균 신장이라는 남들이 다 당첨되는 당첨금 몇 천원짜리 유전자 복권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이다. 땅딸막한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유전자 복권을 몰아서 탄 사람들이 기득권으로 굳혀놓은 세멘트 맨땅에 헤딩해가며 사는 사람을 지칭한다. 공은 희망의 상징한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달로 여행자를 쏘아 보내고, 회사 일도 Moon Shot Project라고 명명해가며 달을 향해 날려 보내고 있는 디지털 혁명시대에 사회적 약자들의 달을 향한 희망의 Moon Shot Project는 지속되고 있지만 허약하기 그지 없다. 사회적 약자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달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항상 중력에 끌려 떨어진다. 중력은 기득권 세력의 선택적 정의, 골리앗 권력, 커지는 탐욕, 부정부패를 의미한다. 이 중력에 끌려 땅에 떨어진 공은 소시민에게 다시 절망이 된다. 소시민들은 공이 떨어질 것임을 알고도 공을 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을 쏘아올릴 힘도 없어서 삶의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작가 조세희씨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출판의 소회로 세월이 지나면 이런 소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현했다. 작가의 희망과는 달리 세상은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기득권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묘해지고 거대해졌다. 실제로 난쏘공은 지금도 더 심각하게 읽히고 있는 책이다. 어느 해에는 대학입시 지문으로도 출제되었다. 또한 난쏘공에 힘을 얻어 누군가는 아직도 달을 향해 난쏘공을 쏘아 올리고 있다.


조세희 작가가 난쏘공을 올리던 시대와 지금의 난쏘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거의 난쏘공은 중력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이 가진 막강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대부분 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 사람들은 개인이 쏘아 올리는 난쏘공을 포기하고 집단으로 뭉쳐 권력에 직접 항거하며 화염병을 던졌다. 난쏘공이 분노의 화염병으로 진화한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에 약화되고 정보가 민주화되자 SNS를 통해 난쏘공을 쏘는 개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쏘아 올린 제대로 된 난쏘공은 때로는 초연결사회에서의 다른 사람들이 열망을 타고 풍선이 되어 달로 향해 오르는 모습을 연출한다. 광장에 모여 화염병을 던지기보다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세상에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동시에 제자리 뛰기를 해가며 난쏘공을 쏘아도 울림과 공명을 창출할 수 있다. 이 난쏘공이 네트워크 상에서 큰 울림을 창출하면 난쏘공은 이 공명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조세희 작가는 생전에 난쏘공을 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도래하길 열망했지만 시대는 디지털 시대로 전환에 맞추어 새로운 난쏘공을 쏘기를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가 존재목적을 잃은 리더에 의해서 장악되면 될수록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교묘한 불공정성과 차별이 등장해 소시민들을 억압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당한 일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소시민들이 생업을 핑게로 난쏘공 쏘는 일을 포기했을 때이다. 제대로 된 난쏘공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고통 현실 속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다양한 소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 삶의 주인이 되어 쏘아 올렸을 때 사회를 변혁시킨다.


역사는 칠흑과 같은 캄캄한 밤에 모두가 진흙탕 속을 걷고 있어도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음에 의해서 진보되어 왔다.


난쏘공에는 난장이 가족간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환대가 사라진 땅을 차거운 죽은 땅에 비유하는 대화가 나온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최근 <재벌가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다른 방식으로 난쏘공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야기는 소시민 집안에서 태어나 재벌기업의 노예사원으로 살던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재벌가의 막내로 환생해서 재벌가를 통쾌하게 교화시키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던지는 주제도 난쏘공과 같다. 누군가가 재벌가의 아들과 딸로 태어난 것은 유전자 복권 중 가장 큰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재력으로 자녀를 최고의 유전자 복권을 가진 사람들과 짝짖기시켜 자손들의 복권당첨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복권의 당첨판을 돌리는 사람의 의도된 실수(?)로 주인공은 재벌가의 막내로 환생한다. 주인공은 소시민 집안의 아들로 살다가 재벌가 막내로 다시 태어나는 유전자 복권을 당첨되게 한 이유를 질문해가며 삶을 성찰한다. 주인공은 서울법대에 다니는 자신의 여친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머리좋고 지검장을 하고 있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들어간 것이 자신이 모두 노력해서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심지어 이 여친의 아버지도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 유전자를 가진 조상의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라는 것을 일말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살았는지를 되묻는다. 재벌가 사람들에게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는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이유를 따져 물어가며 사건을 통해 교화시키듯 여자 친구가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한번이라도 가지고 살았는지를 묻는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위해 유전자 복권을 당첨시킨 것에 대해 이유를 물어가며 일말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기득권 세력이 지금 보이는 선택적 정의, 풍선같은 탐욕, 이카루스의 허세는 탄생할 수 없었다고 일갈한다.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이 자신의 행운을 자신에게 유전자 복권을 당첨시킨 분에게 돌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당첨시킨 이분의 의도를 물어가며 당첨금을 쪼개 빚을 청산하는 삶을 살 때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산다고 이야기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으로 회심한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이 많아질수록 소시민들은 더 이상 난쏘공을 쏘아올리지 않아도 된다. 당첨자들이 건설해준 더 높은 곳에 지어진 더 평평한 운동장에서 모두가 주인으로 사는 삶을 누린다.


40년 간 시대의 지평을 열어주신 조세희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난쏘공을 쏘는 일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난쏘공을 쏠 필요가 없는 천국에서 편히 지내세요.


2022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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