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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Feb 22. 2019

군바리의 식판 #2

자율배식

*본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둔 창작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억겁 같았던 6주의 시간이 흐르고 훈련소 퇴소 날이 됐다. 저마다 지급받은 군용 더블백에 짐을 싸고 수료식을 마친 후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서울을 지나 의정부로 향했다. 목적지는 306보충대였다. 306보충대는 입대 예정자를 사단 신교대로 보내기 전 장정들을 분류하고 대기시키는 곳이었다. 나는 이미 훈련을 받은 뒤였기 때문에 2박 3일 대기 후 곧바로 자대로 배치되었다. 옆에는 동기 립중이도 함께였다.


립중이와 내가 자대로 배치받은 곳은 경기도 고양시의 한 부대였다. 시멘트로 포장한 오솔길을 오르면 빨간색 지붕으로 된 아담한 막사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 아래로는 훈련소 연병장의 삼분의 일 크기의 작은 연병장이 있었다. 이곳이 군대라는 점을 빼면 한가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막사는 세 개의 내무실과 하나의 행정반 그리고 취사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게는 막사와 취사장은 따로 떨어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막사 내부에 취사장이 있었다. 타 부대로 파견 나와 있는 중대여서 그랬던 것 같다.


립중이와 나는 1내무실로 배정받았다. 1내무실은 본부소대가 생활하는 곳이었다. 본부소대는 통신병, 행정병, 정비병 같은 병사로 구성된 소대로 전투 소대인 2소대와 3소대를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통신병, 립중이는 보급병이었다. 립중이도 처음에는 나와 같은 통신병이었지만 자대에 와서 보직이 변경됐다. 군대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인원이 제대로 보충되지 않아 타 보직에서 사람을 빼오고, 빼온 곳이 부족해지면 다른 곳에서 또 빼오고. 넉넉한 것이라고는 사람뿐인 곳이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6주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군문화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자대는 새로운 곳이었다. 자대는 자대 고유의 문화가 존재했다. 그것은 짬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대에서는 훈련소처럼 개인 숟가락이 지급되지 않았다. 더는 더럽게 관물대에 보관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대신 각 내무실 별로 숟가락을 관리했다. 그래서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보관하는 모든 숟가락을 깨끗이 닦고, 수저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놔야 했다. 자대식 위생관리였고, 이것을 식사 준비라고 불렀다.


식사 후 중대원이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주방용 세제를 미리 풀어놓는 일도 식사 준비 중 하나였다. 낡아빠진 플라스틱 대야에 스펀지와 수세미를 넣고, 적당히 물을 받는다. 그 위에 세제를 푼 뒤 스펀지로 거품을 내주고 수돗가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이밖에도 식단을 미리 외워두기, 식탁 닦아 놓기, 식사시간에 맞춰 선임들을 부르기 등이 식사 준비에 해당했다. 이 모든 게 매 끼니마다 이뤄져야 할 의식이자 의무였다.

식사 준비는 각 내무실 이등병의 몫이었다. 나와 립중이는 매 끼니마다 수십 개의 숟가락을 닦고, 세제물을 만들었다. 혹여 깜빡하고 식사 준비를 못했을 땐 바로 윗선임에게 등신 소리를 들으며 갈굼 당해야 했다.


자대의 식사는 훈련소와 달리 자율배식이었다. 메인 반찬을 뺀 나머지 밥과 반찬을 개인이 담을 수 있었다. 훈련소의 어설픈 배식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다. 그건 취사병이었던 양호석 상병이었다.

중대에는 두 명의 취사병이 있었다. 취사장 왕고였던 양호석 상병과 나보다 두 달 후임인 류경일 이병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내무실에서 생활했다.

내가 먹을 만큼 밥을 뜨자 배식하던 양호석 상병이 말했다.


 “왜 그것밖에 안 먹어?!”


내가 밥을 적게 먹어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병 하. 정. 식!”

 “다이어트 하냐?”


이 또한 나를 배려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선임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선임의 말에는 항상 숨은 뜻이 있었다. 이를테면 편히 쉬라고 해서 정말 편히 쉬면 “쉬란다고 진짜 쉬냐? 이 새끼 이거 개념이 없네.”라는 말을 듣기 딱 좋다.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빙빙 둘러서 생각해도 안 된다. 배려하듯 더 먹으라고 할 때는 배가 불러도 더 먹어야 한다. 그건 빨리 먹고 치우라는 소리니까. 결론은 눈치껏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군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양호석 상병의 말뜻은 ‘짬밥도 안 되면서 왜 밥을 적게 먹느냐?’였다.


 “아, 아닙니다!”


나는 얼른 밥을 더 퍼 담았다. 평소 양의 두 배였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등병들의 밥도 산처럼 높이 쌓여있었다.

자대의 식사는 자율배식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모든 배식은 취사장 왕고였던 양호석 상병에 의해 움직였다. 진정한 자율배식은 양호석 상병보다 짬이 높아야 가능했다. 아니면 그가 전역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먹는 게 느린데 양도 많아지니 그 속도는 더 더뎠다. 밥을 다 먹고 기다리는 선임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겁지겁 밥을 떠 넣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선임이 말했다.


 “야, 천천히 먹어.”


군대에서 처음으로 듣는 ‘천천히’라는 말이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안도할 새도 없이 누군가 내 다리를 툭 찼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경호 일병이었다. 1내무실의 모든 이등병은 그가 관리했다.

그의 눈은 날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둔하지는 않았다. 앞선 선임의 말은 천천히가 아니라 빨리 먹으라는 소리였다. 더 빨리 먹을 수 없었던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선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소 조교는 앵무새처럼 밥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자대에는 조교가 없다. 그러나 선임이 있다. 그들은 내게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눈치를 줬다. 차라리 재촉이 나았다. 조교들은 양반이었다.

훈련소에서 조교들이 틈만 나면 했던 말이 있다.


 “자대 가면 편할 거 같지? 훈련소는 편한 거다. 자대는 더 힘들다.”


조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잔반을 버리러 가는 길에 양호석 상병과 마주쳤다. 그의 눈이 내 식판을 훑었고, 이등병이 개념 없이 밥을 남겼다며 한차례 갈굼이 이어졌다. 조교의 말은 정말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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