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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21. 2019

군바리의 식판 #3

찌개가 없으니 오로지 국이다.

*본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둔 창작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휴가 가면 뭐부터 먹을 거야?”


함께 수돗가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립중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됐고, 곧 백일 휴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일 휴가는 신병에게 주어지는 위로 휴가로 100일이 지나야 나갈 수 있었다. 기간은 4박 5일. 그래서 립중이와 나는 틈만 나면 휴가 계획을 수첩에 적고는 했다. 1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백일 휴가를 앞둔 이등병이라면 철저한 계획 수립은 필수였다.


  “나는 메타콘.”


나는 평소 군것질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은 물론 과자도 잘 먹지 않았지만 훈련소에서 딱 한 번 먹었던 메타콘의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나가면 슈퍼부터 달려가겠노라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었다. 


  “너는?”


립중이는 숟가락을 닦던 손을 멈추며 대답했다.


  “나는 나가면 김치찌개부터 먹을 거야. 얼큰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크으….” 


그는 손으로 술 마시는 흉내를 잊지 않았다. 표정은 마치 소주 한 병을 이미 다 비운 것 같았다. 


  “의외로 소박하네?”

  “메타콘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립중이를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어쩐지 김치찌개보다는 삼겹살이 더 그에게 어울렸다. 하기야 군대에 있으면 다른 음식보다 평소 먹던 집 밥이 가장 그립다. 원래 익숙한 맛이 무서운 법이니까. 

군대에 있으면 못 먹는 음식이 많다. 계란 프라이 같은 간단한 음식도 집에서야 간단하지 군대에서는 먹기 힘들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모두 귀하다. 찌개도 그중 하나다. 

대량으로 음식을 해대는 군대에서 자작자작하게 끓인 찌개를 먹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식단에 찌개가 있어도 어디까지나 이름뿐, 모양새나 맛은 국에 가까웠다. 립중이의 김치찌개도 먹을 수 없다는 결핍에서 온 갈망이었을 것이다.


찌개를 먹을 수 없으니 군대에서는 먹을 수 있는 국물은 오로지 국뿐이었다. 된장국, 시래깃국, 북엇국, 미역국, 계란국, 곰국, 육개장, 김칫국, 오뎅국, 등등. 알려진 국이란 국은 죄다 나왔고, 우리나라에 국이 정말 많은 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숟가락을 다 닦고 나와 립중이는 취사장 식탁을 닦고 나서 내무실로 복귀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침상에는 먼저 온 선임들이 앉아 있었다. 미리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은 수저통은 침상 사이에 있는 허름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내무실 안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막내야, 오늘 반찬 뭐냐?”


같은 통신병이었던 조용기 병장이었다. 그는 전역을 한 달 정도 남겨둔 말년병장으로 1내무실 왕고였다. 립중이는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소리 높여 대답했다. 


  “이병 윤립중! 김치볶음이랑 두부조림입니다.”

  “국은?”

  “된장국입니다.”


조용기 병장은 인상을 팍 썼다. 


  “또?! 아…. 지겨워.”


조용기 병장은 된장국이 나오는 날이면 늘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된장국을 똥국이라 비하하며 항상 치를 떨었다. 된장국은 짬밥의 단골 메뉴였다. 못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나왔고, 다른 국에 비해 맛도 별로였다. 조용기 병장은 2년을 넘게 짬밥을 먹었다. 된장국이 싫을 만도 했다. 

조용기 병장이 알았다는 손짓을 하자 립중이가 다시 침상에 앉았다. 그 사이 나는 병장의 말에 빠릿빠릿 대답하지 않았다며 정경호 일병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너는 왜 대답 안 해?! 립중이만 막내야? 넌 막내 아니야?”

  “아, 아닙니다.”

  “이 새끼가 쳐 빠져 가지고 군생활 편하지?”

  “…….”

  “대답 안 해? 쌩까냐?”

  “아닙니다!”


선임이 이등병을 불특정 하게 부르면 대답하지 않더라도 관등성명은 대야 했다. 예를 들어 병장이 “오늘 당직 누구냐?”라고 질문했다면 이등병들은 모두 관등성명을 외치며 대답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맞선임의 갈굼이 이어졌다. 

무언가를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등병이 먼저 움직여 시킨 일을 해도 눈치껏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너무 하는 척만 하면 또 하는 척만 한다고 갈굼을 당했다. 이등병의 생활은 언제나 갈굼으로 시작해 갈굼으로 끝났다.

정경호 일병의 닦달은 식사 직전까지 계속됐고, 나는 앵무새처럼 “아닙니다.”만을 계속 말해야 했다. 


이날 조용기 병장은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물론 짬밥 대신 라면을 먹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말년병장에게 안 되는 일 따윈 없었다. 그는 전역하기 전까지 된장국이 나오는 날이면 언제나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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