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쓰다'
소규모 농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는 WWOOF. 세계 곳곳에 농부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더라도 농장에 머무르며 리얼 현지인이 되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지요.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제가 농부를 흠모하게 된 데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이탈리아의 농부와 농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시내의 케케묵은 우프 여행 이야기 #3_Lecce, Italia
이탈리아는 어딜 가나 약간의 무질서함이 느껴지지만, 남부 이탈리아는 좀 달랐다. 독보적이랄까? 도시 전체가 시장통 같은 분위기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북부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왠지 길도 다 울퉁불퉁한 것 같고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전체적으로 데시벨이 높았다. 다른 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여차여차 도착한 농장에서 만난 안토니오는 독특한 농부였다. 아침 일찍 양들에게 견과류와 곡물, 지푸라기를 주며 하루를 연다. 젖을 짠 뒤 집으로 돌아오면 레게 음악을 틀고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쉬는 시간에는 추억의 버블버블 게임에 열중한다. 아내인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애인이자 동료였던 마리는 잔소리하면서도 은근 게임을 즐겼다.
양 한 마리 한마리 손으로 착유하고 치즈 만드는 안토니오의 두 번째 직업은 DJ였다. 모델 DJ, 디자이너 DJ는 봤어도, 농부 DJ라니! 일과 후 나를 데리고 간 작은 클럽에서 농부는 빛이 났다. 남은 에너지를 다 소진하겠다는 듯 맥주를 마시며 레게와 덥스텝을 틀었다. 농부로서 충분히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취미와 여유가 있었다. 마리와 닭장을 지으며 깔깔대고, 가끔 이웃들을 불러 양 바베큐를 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음악에 푹 빠진다. '이렇게 사는 농부도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하루에 몇 개 밖에 나오지 않는 정성 가득한 양 치즈를 단돈 3유로에 파는 안토니오. 노력에 비해 너무 저렴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동네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사갈 수 있는 가격이라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마리와 안토니오의 양농장은 지금까지 가보았던 우프 농장 중에 가장 열악한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순간을 즐기는 행복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2018년 5월 9일
농촌 힙스터가 되고 싶은, 장시내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