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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펀드 Jun 04. 2018

#15. 글로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 쓰다'


글로 농사를 짓습니다.


3년 전, 이맘때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이름으로 잡지에 처음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회사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강의를 제안받았습니다. 얼떨결에 강의를 수락했고 지난주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강의를 내용 중 여러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오늘의 글에 옮겨봅니다. 

(강의록 일부 발췌) 
오늘 강의의 주제를 ‘글로 농사짓는다’로 정했습니다. 글로 농사를 짓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된 농부님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몇 달 전, 한 농부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터미널에 데려다주겠다며 얻어 탄 차에서 농부님께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농부님, 농부님은 왜 농사를 지으세요?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농부가 갑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농부가 갑이 되는 세상이라니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대형 유통채널에 농산물을 내고 있는 농부였기에, 주변 농부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농사를 잘 짓고 있는 농부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올라오는 버스에서 고민하기를 몇 번, 고민하기를 몇 번. 갑작스럽게 무릎을 탁 치며 힌트가 생각났습니다. 

'시장에는 농부가 없고, 상품만 있구나.'
모두 부모님들이니까 잘 아시죠? 금지옥엽 잘 키운 내 자식도 내 마음처럼 안 되잖아요. 농부도 같은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우박이 쏟아지는 날이면 농부가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은 시장에서 모두 하품 취급 받기 십상이지요. 유통 시장에서 농부는 못난 자식을 키운, ‘을’이 되는 것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지금의 시장. 그 사이에서 저는 소비자와 농부의 사이를 가깝게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농부와 함께 농사짓는 공동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농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농부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본인의 생각과 모습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공동 생산자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가 소비로 농부와 함께 농사짓듯이 저는 농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글로써, 사진으로써 농부와 함께 농사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하 생략)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강의를 마쳤다는 후련함과 함께, 내가 한 말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가끔 이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지요. 소비자의 마음을 농부에게 전달하고, 농부의 마음을 소비자에게 잘 전달해도 중간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농부와 함께 농사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농부 혼자, 에디터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치 있는 소비로 농부와 함께 농사지어주시는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농사펀드를 통해 기꺼이 공동생산자가 되어주신 여러분, 오늘도 함께 농사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7월 17일 
더디지만, 천천히 글로 농사를 짓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에디터 이진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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