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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Sep 09. 2023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하여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내가 "영화 감상"을 취미로 들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크리스토퍼 놀란, 조 라이트, 샘 맨데스, 그레타 거윅, 봉준호, 박찬욱, 오즈 야스지로, 하마구치 류스케 등등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자신 있게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그들의 작품은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아니, 대체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어디까지나 개별적 작품으로서의 영화들이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스몰토크 도중에 그런 고뇌를 토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모범답안을 정해두기로 했다. 위에 언급한 네임드 감독들 누구라 대답해도 남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감독"에 가장 가까운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좋아하는 감독"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본 고레에다 영화는 <공기인형>이었는데 첫인상은 영 별로였다. 그 때문인지 그 뒤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인정하고자 하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개별적으로는 괜찮은 작품도 있지만, 어딘가 장점보다는 결점이 눈에 더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고레에다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어딘가 아쉬움을 느낀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영화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샘 멘데스, 봉준호, 박찬욱이 더 가깝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중에서 "좋아하는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왓챠피디아가 인증한 내 선호감독

고레에다를 "좋아하는 감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어느 가족>(2018) 무렵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레에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2000년대까지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2010년대 이후는 안정적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찍고 있다.


데뷔작 <환상의 빛>부터 최신작 <괴물>까지 고레에다의 장편 영화는 16편이다. 30년 동안 16편, 대략 2년에 한 편씩 찍은 셈이니 과작(寡作)이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다작(多作)에 속하는 감독일 것이다. 게다가 작품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사회비판이나 휴먼드라마는 공통적 주제지만, <원더풀 라이프>나 <공기인형>처럼 판타지 설정이 있는 영화도 있고, <세 번째 살인>처럼 크라임 서스펜스 요소가 있는 영화도 있다. <하나>는 시대배경이 에도시대다. <아무도 모른다>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절망적 영화도 있고, <태풍이 지나가고>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믹한 영화도 있다. 최근에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나 <브로커>를 통해 프랑스와 한국으로 무대를 넓혔다. <고잉 마이 홈>에서는 10부작 드라마를 찍었고, <아리무라 카스미의 촬휴>라는 옴니버스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가수 Cocco를 취재한 <괜찮기를>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고레에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음 영화는 어떤 내용이 될지 매번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감독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물론 고레에다 특유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개성은 지울 수 없이 남아있다. 어쨌든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많이 만든 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한 편씩 다뤄 보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서 망설임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해석이나 해설이 필요할 정도로 난해한 부분이 거의 없다. 아니, 해석이나 해설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닌 아마추어 영화 애호가인 내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부분까지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깊이 있는 해석이 아닌 기초적 사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레에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비평은 한국에도 수없이 많다. 브런치에서 검색해도 수백 건은 나온다. 굳이 내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분석한 글들이 많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감독 본인이 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나 <걷는 듯 천천히> 같은 책들은 국내에도 다수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론으로서 고레에다의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다룬 책은 없는 것 같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감히 도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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