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 만든 사랑
마음이 몹시 추웠던
그날 밤은,
머리맡에 두었던 책 가운데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들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 하나 없는 서울에서 혼자 어디를 찾아가는 것이 어색한 내가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서점이었다.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오래도록 서성여도 누구 하나 이상한 눈길을 보내거나 눈치를 주는 이는 없다. 주말에 크로스백을 메고 집을 나서자면 언니는 “서점 가나?”라고 물어왔다. 서점을 갈 때면 늘 양손을 가볍게 하기 위해 크로스백을 둘러 멘다. 그래야 책을 읽을 때 거슬림이 없기 때문에.
주로 가는 곳은 강남 교보 문고였다. 집에서 교보 문고까지는 지하철과 도보로 꽤 거리가 있지만 가는 길이 지루하다거나 즐겁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점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놓여있는 책과 그것들의 냄새로 내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 쿵쾅 거리고 있었다. 장르를 정해두고 책을 읽지는 않았다. 발길이 닿는 곳에 가서 무작정 책을 집어 들면 그만이다. 신기한 건 책을 집어 든 순간 주위 소리는 음소거되어 마치 이 세상에 나와 한 권의 책만 남겨진 것 같아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 시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가끔 만화나 동화책 코너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책은 구입하는 날보다 구입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어쩌다 책을 구입해 서점을 나오자면 가는 길에 한번을 참지 못하고 꼭 꺼내어 한 문장씩은 읽었다. 그렇게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은 서늘해진 마음에 따스한 숨을 한 모금 불어 넣는 것과 같아 어떤 주말에도 서점에 가지 않은 날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한 달에 1권도 읽지 않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시절 달리 갈 곳 없는 내가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서점이었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책이었기에 서점과 책을 좋아한다 착각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