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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 Jan 27. 2021

누나들의 세계

남동생 눈으로 본 왜 싸우는지도 모르겠지만, 화해도 잘하는 누나들



“니가 밥 볶아주는 게 제일 맛있어. 역시 남동생이 최고야.”

누나들이 또 시작이다. 

내가 해주는 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기어코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하게 만든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작은누나는 중1, 큰누나는 중3이다. 딸 둘에 막내가 아들이라면 다들 귀하게 컸다고 말할 테지만.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나를 위하는 말이라도 엄마가 하면 “딸이라고 차별해? 왜 남동생한테만 그렇게 말해.” 둘은 그렇게 나에 관한 것이라면 똘똘 뭉친다. 여전사가 된다. 가끔은 콩쥐, 팥쥐에서 팥쥐가 누나들이고 콩쥐가 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니가 결혼할 때쯤 되면 남자들이 요리할 때가 온다고. 우리 때문에 미리 연습하고 얼마나 좋아. 그때는 요리 못하면 장가도 못가.” 큰누나, 작은누나는 낄낄거리며 말한다. 누가 먼저 결혼하나 보자고. TV 보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저, 팥쥐들. 수저 세팅까지 하고는 밥 먹으라고 말하면 그제야 둘은 어깨동무하며 나타난다. 저 둘은 밥 먹기 전에, 아니 나에게 요리를 시키기 전까지는 화기애애하다. 

“진짜, 맛있다. 니가 했으니깐 더 먹어.” 인심 쓰듯이 큰 누나가 말한다. 모를 줄 아나? 자신이 배불러서 더 먹기 싫을 때 꼭 저런 말을 한다. 결국, 마지막까지 먹는 것은 나의 몫이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된다. 이 정도 남을 걸 버리기도 그렇고, 다 먹기에는 배부르고. 이러니 내가 살이 쪄, 안 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누나들이 뜸을 들인다.

“야, 막내가 요리했는데 설거지는 우리가 해야지. 저번에는 내가 했으니깐, 이번에는 니가 해.” 큰누나가 작은누나에게 말한다. “무슨 내가 했어. 언니는 맨날, 이런 식으로 피하더라.” 또 시작이다. 설거지를 당연히 할 것처럼 하고는 저런 식으로 자기들이 마지막으로 했다면서 미룬다. 큰누나가 작은누나한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제안한다. 순조롭게 해결되겠군. 작은 누나가 이겼다. 큰누나가 갑자기 “나 안 해. 하기 싫어.”라면서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작은누나가 “뭐야!” 소리치면서 따라 들어간다. 큰누나가 “니가 좀 하면 안 되냐? 하기 싫어. 니가 해.” 정의감에 불타는 작은누나가 순조롭게 넘어갈 리가 없다. 

“뭐야. 먼저 가위바위보를 하자면서. 지니깐 싫다고? 빨리 설거지해! 안 할 거야?”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큰누나가 작은누나를 밀친다. 솔직히 큰누나는 말로도 힘으로도 지는데 매번 저렇게 시비를 건다. 큰누나가 작은누나의 머리끄덩이를 먼저 잡는다. 작은누나도 질세라 큰 누나 머리카락을 움켜잡는다. 이게 무슨 일인가. 밥 잘 먹고 뭐 하는 짓인지. 이젠 지겹다.

 “누나들, 그만 싸워.” 

라고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려본다. 조용히 베란다로 이동해서 누나들의 싸움을 안방 창을 통해 구경한다.

“야, 너 머리 빨리 놔.” 

“싫어, 언니가 먼저 놔.” 

“니가 놓아야 내가 놓지.”

“언닐 뭘 믿고.”

“숫자 셋 세면 같이 놔.” 결국은 큰누나가 먼저 깃발을 든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서로의 머리끄덩이 잡은 손을 놓는다. 각자의 손에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있다. 미쳤다. 누나들은 원래 저렇게 싸우는 것인가. 이게 싸울 일인가. 이해가 안 된다. 둘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머리는 미친년 산발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슬글슬금 나온다. 

큰누나는 세수하고는 머리를 바짝 다시 매만진다. 씩씩거리며 설거지를 한다. 세상에나, 그냥 하면 될 것은 저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할 일이냐고. 어이가 없다.

“우리 싸운 거 엄마한테 말하면 죽. 는. 다.”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일심동체가 되어서 나에게 말한다.

“어, 알았어.” 나는 조용히 동의한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엄마는

“별일 없었지?”라고 물어본다. 

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운 착한 어린이니깐 사실대로 말한다. 

“아니, 누나들 머리채 잡고 싸웠어요.” 

“으이구, 저것들이.” 

누나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다정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나를 노려본다. 그 사이 친해진거야? 놀랍다. 누나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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