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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 Aug 01. 2023

선생님도 선생님이잖아요

낯가리는 강사의 강의 기록 3

5회차 수업이 됐다. 

늘 수업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5회차가 되니 쉬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게 된다. 2층 교무실로 올라가서 출근 서명을 하고 교실로 향한다. 이제 익숙해졌다고 속으로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수업 끝나기 직전의 어수선함이 교실 밖으로 흘러나온다. 3층으로 올라가서 코너를 돌고 수업할 반을 찾는데 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내가 지나쳤나. 3층 전체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도 반이 보이지 않는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학교 건물이 연결 돼 있어서 한 층을 다 보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교실도 못 찾는 거야.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이럴 때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후다닥 2층 교무실 앞으로 내려갔다. 2층으로 내려간 순간 알았다. 수업하는 반은 4층이었는데 3층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어이가 없는.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에게 아는 척하며 인사하는 친구도 있고, 수학 문제를 푸는 친구도 있었다. '휴, 다행이다.'


길을 헤매는 것은 중증이다. 몇 번을 가는 길도 색다르게 헤맨다. 전철을 반대로 타는 경우는 일상이다. 그래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처음 가는 약속 장소일때는 만나기 전부터 위치 확인을 한다. 전철역과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 왼쪽으로 가는지 체크한다. 그래도 불안해서 내비게이션에 약속 장소 주소를 입력한다. 도착해서 해당 출구로 나오고 걸어가다 혹시나 하고 내비게이션을 열면 반대로 가고 있다. 길을 모르는 대도 잘못된 느낌이 드는 건 다행이다. 현재 나의 위치를 잡고 지도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리면서 도착지를 살핀다. 나의 현 위치에서 장소까지 한걸음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이동한다. 길치는 운전하면서 나아질 줄 알았다. 그래도 헤매이지만 돌아 돌아 찾아가기는 한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어디라도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도만 보고 운전을 하라고 하면 또 했을까? 아니면 아예 운전을 포기했을까?




처음 강의했을 때는 아이들과 눈 마주치는 것도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하는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이 아닌지 조심하다가, 또 말 나오는 대로 했다가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가도 이 정도면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하는지 모르겠다. 강의 한 시간 전부터 단전에서 올라오는 긴장감이 스멀거린다.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느긋해 보여요. 쉽게 하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는 것이 다행이지만, 실은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거린다. 그래서 빈속으로 수업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탈진상태가 된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 밑에서 발은 동동거린다. 그 모습을 용케 감추고 살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든다.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야, 지금 국어 선생님 온다." 회사에서 사원들끼리 웃고 떠들다가 대리가 부장님오신다는 뉘앙스다. 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도 선생님이잖아요." 일하다가도 회사 대표가 등장하면 벌떡 일어나 90도 깍득하게 인사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걸 원했는지 모르겠다. 담당 선생님은 부장님이 되고 아이들은 사원인 모습이다. 선생님도 선생님이란 말에 내가 비겁해진 기분이다. 평소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글도 한 줄 이상 쓰지 않던 친구가 나를 한 줄로 제압했다. 한 줄 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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