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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May 31. 2020

How to Do Nothing

생산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한때 농담처럼 퍼지던 말이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표현하기를 강요받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원해야만 가까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위치한 오클랜드에서 아티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제니 오델(Jenny Odell)은 그녀의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How to Do Nothing)'에서 소셜미디어에 침투해 있는 어텐션 이코노미(Attention economy)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합니다.


<How to Do Nothing> 책 표지


이번에 새로운 연재 <Neo Adult Report -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어른들을 위한 보고서>를 구상하면서 저는 삶의 전환점에서 다음 여정을 위한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러한 기로에 서 있기에 삶의 전환점에서 의사 결정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주저되는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생각의 고리를 엮어나가야 할지가 여간 막막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당장에 해답을 얻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가치들은 무엇이고, 그것들을 따라 인생의 한 시기를 헌신하는 것은 정당한지, 아니라면 어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있을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조금 거창한 얘기가 되어 버렸는데요. 간단하게는 이러한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책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함께 생각할 지점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How to Do Nothing'이라는 제목에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자기 계발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젠 너무 지쳤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었다 가자고 주장하는 가벼운 책도 아니고요. 어떻게 하면 소셜미디어 중독에서 벗어날까에 대한 지침서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규정하지 쉽지 않은 이 책의 장르에 대해 굳이 얘기하자면 환경운동 혹은 정치적 메니페스토에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어텐션 이코노미가 어떻게 환경의 정치학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지 조금은 긴 호흡으로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어텐션 이코노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1971년에 이미 '어텐션 이코노미'의 도래를 예고했습니다. 그는 정보가 많이 생산될수록 그것을 소비하는 수용자의 '관심'은 희소해진다고 언급하며, 이에 따라 희소해진 관심을 수많은 정보원에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공짜로 정보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돈 대신 우리의 관심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의 수익과 직결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관심을 그들의 플랫폼에 더 오래 묶어두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불안과 분노를 유발하는 뉴스들로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뉴스들에 병적으로 흥분하는 히스테리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갑니다. 소셜미디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구호 아래 온라인 자아를 만들고 끊임없이 자기를 표현해야 하는 개인 기업가가 됩니다. 이제 하루 24시간 전체가 돈벌이가 가능한 시간이 되어 우리는 한시도 어떻게 더 '생산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떨쳐 버리고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생산성에 이토록 헌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텐션 이코노미가 규정하는 생산적인 시간이 과연 우리의 충만한 삶을 위해서도 생산적인 것일까요.


이 책의 저자인 제니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텐션 이코노미가 강요하는 생산성에 저항하자고 주장합니다. 간단하게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고 합니다. 본인이 집 근처 로즈 가든(책 표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에 있는 미로를 천천히 걸으며 꽃들을 관찰하고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말이죠. 혹은 이따금 자신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습지를 돌아다니며 새를 관찰하고 그것들의 이름과 행동에 익숙해져 가는 것과 같은 활동도 추천합니다.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제니 오델은 그녀의 작업에서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대신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수집하여 다른 맥락으로 가져와 새롭게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가 샌프란시스코 쓰레기 폐기장(Recology SF)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며 작업했던 'The Bureau of Suspended Objects'라는 프로젝트에서처럼요. 이 작업에서 그녀는 쓰레기 폐기장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물건들의 재료, 제조년도, 제조업체 등을 조사하고 물건들과 함께 전시하여서 그녀의 전시에 오는 사람들이 물건들 밑에 달린 QR코드를 통해 물건의 기원을 열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제니 오델이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어텐션 이코노미가 규정한 생산성에 부합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생산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정원, 습지, 작은 전시장과 같은 공공장소가 꼭 필요한 것이죠.


The Bureau of Suspended Objects by Jenny Odell (image from mv-voice.com)


대안으로써의 도피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면 흔히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탈퇴하거나 휴면계정을 돌리는 것을 떠올리곤 합니다. 혹은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고요. 실제로 휴일에 도시를 떠나 숲 속 오두막집에서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요가와 명상과 같은 활동을 통해 온라인 업무에서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결국 잠깐의 휴식을 통해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을 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수단, 즉 직장인들의 주말 워크숍 정도로 이용될 뿐 어텐션 이코노미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해결책이 되어 주지는 못합니다.


과거에도 사회가 잘못된 관습과 제도로 개인을 억압할 때 지금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는 늘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에피쿠로스 학파는 도시를 떠나 가든 스쿨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만의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에피쿠로스 하면 떠올리면 쾌락을 좇는 사람들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그들은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여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식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그때에 이미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당시 베트남 전쟁,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의 암살 등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탈물질적인 삶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커뮨 운동(Commune movement)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경쟁적인 도시와 인위적인 도시 근교의 삶을 벗어나 복잡한 정치적 논쟁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들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어떠한 사회적 책임도 이행하지 않는 이기적인 집단이 되었고, 그들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정치적 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공동체에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조율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그들이 떠나온 사회보다 더 억압적인 명령과 복종이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소음을 외면한 공동체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제3의 공간에서의 저항


제니 오델은 사회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나 사회를 떠나 도피하는 것이 아닌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저항하는 것, '제3의 공간'에서의 저항을 주장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 수익을 올리는 어텐션 이코노미에서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의 관심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것에 우리의 관심이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 주변에 해결해야 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고정하고 관심을 키워나가고 관심을 행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제어하는 훈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관찰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더 발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의 대상을 긴 시간 동안 보고 또 보는 것이죠.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요크셔 지방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요. 풍경화가 지루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에는 지루할 틈이 없다고, 항상 관찰할 수 있는 정말 많은 것들이 그 속에 있다고, 만일 누군가가 자연을 지루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시선이 지루한 것뿐이라고. 열여덟 개의 카메라를 자동차 문에 달고 요크셔 지역을 천천히 운전하면서 숲 속 풍경을 담은 그의 비디오 연작 'Yorshire Landscapes'에서 그는 열여덟 개의 조금씩 어긋난 시선으로 바라본 느린 관찰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Yorkshire Landscapes by David Hockney (image from latimes.com)


한 곳에 관심을 고정하는 것이 훈련되었다면 다음에는 대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우리가 무언가를 관찰하고 관계를 맺을 때 '나와 그것(I-It)'과 '나와 너(I-Thou)'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와 그것'의 방식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본다면 대상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되고 분석될 뿐이지만, '나와 너'의 방식으로 대상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인식해 나간다면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상대방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을 '나와 너'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관계 맺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그들의 눈물을 내 눈물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니 오델은 '나와 너'의 관계 맺기가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생태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주장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동식물을 새와 나무로 인식하는 대신 레드우드와 왜가리로 알아가고 그들의 서식과 성장을 함께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관심에서 행동으로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의미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토론과 합의가 필요합니다. 제니 오델은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논쟁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에는 시간과 공간의 맥락이 상실되어 있기 때문이죠. 지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열어 각자의 뉴스피드를 확인해 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갈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공동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민주주의의 씨앗은 함께 의미 있는 논의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며 이를 '출현의 공간(Space of appearance)'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러한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 출현의 공간은 힘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소셜미디어가 만든 가상의 공간이 아닌 맥락을 회복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최초의 전산화된 소셜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커뮤니티 메모리(Community Memory)는 지역적 맥락을 기반으로 한 장치였습니다. 1973년 버클리 캠퍼스 한편에 있던 이 키오스크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원하는 정보를 올리고 (25센트 동전을 넣어야 했습니다) 읽을 수 있는 전산화된 게시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 지역 어디에서 괜찮은 베이글을 구할 수 있나요 라고 글을 올리면 제빵사가 그것을 보고 베이글 만들기 클래스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식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의 소셜미디어는 다시 이렇게 친근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고 상대방의 얘기를 오래 들어줄 수 있고 선뜻 호의를 베풀 수도 있는 그런 공간 말이죠.


Community Memory (image from spectrum.ieee.org)


마지막으로 제니 오델은 출현의 공간을 통한 의미 있는 사례로 버클리 지역 원주민의 조개무덤(Shellmound) 보존 사례를 소개합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는 오천 년 전부터 지역 원주민(Ohlone)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버클리 지역 한쪽에 묘지를 만들고 그 위에 조개껍질을 쌓아 부족의 신성한 장소로 사용해 왔습니다. 이 조개무덤의 규모는 높이 6미터에 너비는 수십 미터에 달했는데 20세기 들어 지역 개발이 진행되면서 조개무덤이 훼손되어 지금은 한 식당의 주차장 정도 공간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조개껍질은 없어지고 매장지 위에 아스팔트가 깔린 채로 말이죠. 이곳에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면서 원주민들의 시신이 매장된 마지막 땅을 갈아엎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이에 맞서 지역의 원주민들이 모임을 만들고 땅의 훼손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원주민 그룹은 마지막으로 남은 신성한 땅에 아파트 건설 대신 조개무덤을 형태를 따라 낮은 언덕을 만들어 모두에게 열린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제니 오델은 이 책을 통해 어텐션 이코노미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단순히 소셜미디어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공공장소, 자연환경, 계층 간 갈등을 둘러싼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러니까 한 사람의 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떠오르는 질문을 해보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항상 당장의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서의 중요성을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또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을 따로 떼어 놓아야 합니다. 로즈가든에서 산책을 하거나 습지에서 왜가리를 만나기 위해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요. 이런 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게 불가피해 보입니다. 누군가의 삶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손해가 다른 이의 삶에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사용을 줄이자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막 작은 반찬가게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사람에게라도 더 홍보하는 것을 포기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사람들부터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따라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동참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런 이유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어텐션 이코노미에 저항하는 활동들은 '비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을 동반한 접근이 사회 문제 해결의 지속적인 전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자본의 건강한 선순환을 만들어 내면서 지역 사회의 갈등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 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책입니다. 읽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발견하게 되는 반짝이는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특히 제니 오델이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비디오 작업에서 행위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아트 레퍼런스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기서 제가 책의 내용을 요약하긴 했지만, 줄거리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소설이 있는 것처럼 이 책도 직접 읽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책입니다. 다른 사회과학 책들처럼 일직선 위에 논리를 쌓아가며 설득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똑똑하고 호기심 많은 친구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평소에는 말수가 별로 없는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와서는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일화들을 '그런데 말이야'로 넘나들면서 훌륭하게 엮어내는 바람에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듣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영어로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Neo Adult Report -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어른들을 위한 보고서>의 일환으로 삶의 전환점에 있는 분들이 다음 단계의 여정을 위한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이곳이 삶의 전환점에 있는 분들을 위한 작은 커뮤니티가 되길 바라면서요. 글에서 다룬 여러 지점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하네요.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나 토론하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댓글로 남겨주세요.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이 책에 대해 아내와 토론하며 다뤄 볼 예정입니다. 영상을 통해 텍스트를 더 풍부하게 경험하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 채널로 들어오셔도 좋을 것 같네요. 영상이 완성되는 대로 이곳에 링크 공유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글 시간 내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R4lIe8pUz8&t=125s


https://www.youtube.com/watch?v=_Gt1g-AzlaA&t=7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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