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스라엘의 문화 차이 세 가지
남편 따라 히브리대(Hebrew Univ.)를 왔다 갔다 하면서 키파(kippa) 쓴 유대인들, 히잡(hijab) 두른 아랍 여성들을 자주 본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차이 말고도 수업을 따라 들어가면서 뭔가 보이는 다른 차이점들이 있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걸으면서, 여기서 5년 이상 산 남편과 대화하면서 우리가 본 그들만의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히브리대는 여기 이스라엘에서는 한국의 서울대처럼 알아주는 국내 종합대학이다. 텔아비브 대학(Tel Aviv Univ.),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등도 유명하지만 대체로는 히브리대를 1위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교수님이든 학생이든 정말 옷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교정을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어떤 행인이 나중에 보니 수학과 교수님이고, 저기 잔디에서 공놀이하고 있는 세 명이 다 조교들이고, 이런 식이다. 수업을 들어오시는 교수님들도 하나같이 정장은 없다. 다 긴 팔에 청바지 느낌. 학생들도 입던 옷 계속 입는 것 같고, 아주 평범하게 다닌다. 다만 아랍 여성들은 Dior 같은 명품 백팩이나 핸드백을 좀 들고 다니는 걸 보았다. 아랍 여성들은 히잡으로 많이 가리고 다니기 때문에 액세서리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었다. 수평적이고 격식 없는 문화여서 옷에서도 드러나는 걸까. 하여튼 외모로만 보면 학생인지 교수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더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난 개인적으로 질문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것 같다. 대학 수업 때도 대부분 수업 시간에 족보만 보았지 굳이 교수님께 질문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특히 본인의 질문이 수업에 방해가 될까 봐, 혹은 너무 튈까 봐 질문하지 않는 문화였던 것 같다. 또는 그 질문이 유익하지 않고, 뻔한 질문일까 봐 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좋아했던 나는 점차 눈에 띄지 않는 게 평타 이상은 된다는 걸 배워갔다.
그런데 여기 와서 직관하는 수업의 모습은 정 반대였다. 남편이 수학과 학생이어서 내가 들어가는 수업은 수학과가 전부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학생들이 손 들지 않고 머릿속 말들을 그대로 뱉는 느낌이었다. '내 질문 때문에 수업이 방해가 될까 봐' 이런 건 없다. 중간에 교수님이 틀렸다 싶으면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온다. 학생들이 손 들지 않고 교수님께 직접 말한다. 마치 학생들이 교수님과 토론하는 것 같다. 여기는 정말 자유롭구나. 한 번은 수업 중간에 학생이 아예 교실을 나간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나이 드신 러시아 교수님이었는데,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주기는커녕 '너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라고 말하셨다고 한다(수업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어서 난 못 알아듣는다). 그 답변에 기분이 팍 상한 그 학생은 '내가 알아서 공부하겠다'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이건 정말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업 풍경들을 보면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굉장히 수평적이다.
한국과 비슷한 점은 잘 가르치는 교수님일수록 인기가 많다는 것. 그런 분들은 쉬는 시간에도 쉬질 못하신다. 열심히 질문받아주다가 시간이 돼서 다시 수업하고, 끝나면 또 학생들이 나와서 질문하는 식이다. 한편 학생들끼리 질문을 주고받기도 한다. 대부분 교수님이 바빠 보이실 때. 뭔가 '자생적'인 학습 생태계가 꾸려지는 것 같은 분위기다.
우리는 컴플레인(complain), 진상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인 말에 쓴다. 대체로 한국 문화는 컴플레인 걸지 않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여기는 컴플레인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학교 사무처에서 뭔가 꼬였을 때, 마트에서 산 간식이 뜯어보니 이상할 때, 또는 어떤 일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방향이 아닌, 다른 식으로 틀어졌을 때 그걸 따져서 말하면 대체로 더 나은 방향으로 해준다. 컴플레인에 답하는 상대방도 그런 '의의 제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한편 이 나라는 행정 처리가 참 느린 곳이어서 '컴플레인'을 하지 않으면 본인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에, 잘 살아가려면 잘 따져야 한다.
일례로 난 최근에 땅콩을 환불받은 적이 있다. 그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슈퍼에서 땅콩을 산 직후 집 가는 길에 뜯어봤는데 땅콩 껍질 안에 뭔지 모를 먼지 같은 게 차 있었다. 땅콩 알맹이도 있었지만 먼지 때문에 불쾌해서 먹기가 꺼려졌는데 남편에게 말했더니 다시 슈퍼로 가서 말하겠다고 했다. 이미 봉지도 뜯고, 땅콩도 깠는데 괜찮을까 싶었다. 슈퍼에서 남편이 땅콩을 보이면서 말하니, 바로 그 가격만큼의 할인증(영수증과 비슷한데 그 안에 찍힌 금액만큼 할인해주는 것)을 주었다. 오는 길에 '미리 뜯어봐서 다행이다'는 얘기를 해주는 남편을 보며, 고맙기도 했지만, 컴플레인을 하면 잘 대처해주는 모습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얘기를 하자면, '학사 일정 상, 당신은 히브리어 레벨이 달라서 입학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통지를 받은 내 친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훌륭한 성적으로 마친 상태였다. 참고로 히브리대는 '메키나'라는 입학 전 과정(preparatory program)이 있고, '울판'(Ulpan)이라는 히브리어 수업이 있다. 수업의 95%가 히브리어로 진행되기에, 외국인들은 '울판'을 통과해야 그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친지는 코로나 시국 중에 줌으로 수업도 다 듣고 성적표도 받았는데 대학교 입학과 기숙사 모두 허가가 안된다는 메일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것도 출국하기로 하고 비행기 티켓도 산 상황에서. 그래서 그가 한 일은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연락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한 명에게 연락했는데, 자꾸 다른 사람 연락처를 주며 이 사람에게 연락하라고 토스했다고 한다. 거의 2주 가까운 시간이 걸려, 입학 전 과정 담당자(Mechina Advisor), 입학처장(Admission director), 입학 부서 직원(Admission department) 등에게 연락하다가 마지막에 '이 경우 특별히 당신에게 입학을 허가한다, 대신 히브리어 과정 몇 가지를 통과해야 하고, 어떤 테스트를 봐야 한다'는 식으로 입학 허가의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모든 과정을 잘 마치고 원하는 학과를 잘 다니고 있다.
이 외에도 길에서 보행자가 보이면 차량이 잘 멈춰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랍 동네에서는 오히려 반대 경우도 겪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보행자를 잘 배려해주는 걸 느낀다. 길을 건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사람이 길을 건너려는 것 같다 싶으면 벌써 멈춰선다. 벌금이 세서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이런 모습은 이 나라의 품격을 높여준다.
아직 이스라엘의 많은 곳을 돌아보진 못했지만, 현지인들처럼 살면서 점점 이 나라를 알게 된다.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이스라엘은 자유롭다'. 한국이 잘 정돈되고 모든 게 빠릿하게 돌아가는 사회라면, 여기는 중구난방도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 펼치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곳이랄까. 달라서 더 매력적인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