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마음 읽기
1. 어깨가 넓은 그녀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는 모델에게 줄 돈이 없어 자신을 모델 삼아 그렸다. 어떤 화가들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혹은 사랑하지 않아서 그리기도 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정들었고, 사랑했으니, 그려볼 만하다.
독일 화가 로사 로이의 자화상이다. 초록 계열로 전체적인 톤이 시원한 느낌이다. 원예학과에서도 공부했던 그녀는 화분에 담긴 산세베리아(맞는지 모르겠지만)를 뒤통수에 그려놓았다. 기우뚱해서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쓰러지면 식물 가지에 나 있는 가시 때문에 위태로움은 더해진다. 화분 아래쪽에 뿌리인지 다리인지 모르겠는데 그녀가 다정히 손을 올려놓았다. 화분은 누구를 상징하는가? 살짝 짐작은 가는데 심증일 뿐이다. 어깨 위에 집이 두 채나 얹혀 있다. 웃고 있는데 눈이 슬퍼 보인다. 웃는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두 개의 집이 있다. 내 가족들이 사는 작은 집, 그리고 내 그림들이 사는 작은 집. 두 개의 작은 집은 내 어깨에 올라가 있다. 국경을 초월해도 여자들은 공통분모는 역시, 집이다.
2. 알고 보면 고민이 많은 그녀
예술가 플로린, 그녀는 재미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 당시에 그녀처럼 그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작품을 팔지 않았기에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고, 예술가들이 전시할 때 자신의 그림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들이 꽤 많지만, 나는 유독 이 자화상에 마음이 간다.
페미니스트이고, 정치적인 입지도 꽤 명확했다. 여성이었지만 디자인도 하고 희곡작가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많이 바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그림 그리는 자신을 그렸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또 하나의 고뇌하는 존재가 있었나 보다. 벌거벗은 또 다른 그녀. 곧 떨어질 것 같은 낙엽을 목이 꺾이도록 쳐다보고 있다.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눈에는 별 고민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사실 알고 보면 나름의 애환이 반드시 있다. 그 애환은 타인이 해결해줄 수가 없다. 스스로의 몫이다. 타고난 기질과 상황은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플로린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나의 고민은?
3. 날씨처럼 받아들이는 그녀
독일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부모의 덕이 아닌, 간호사로 일하러 갔다가 미술대학에 가고, 교수까지 되었던 화가 노은님. 그림만 보면, 우리 옆집 다섯 살 꼬맹이가 그렸을 법한 모양이지만,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어렵다고 느낀, 어린아이처럼 그리기이다. 그 어려운걸 노은님은 해낸다.
처음 서울 현대미술관에 가서 우연히 노은님의 작품을 보았는데 충격 그 자체였다. 떨어지는 낙엽을 주워서 하나하나 나뭇가지에 다시 묶었다. 약간 정신이 놀러 간 듯, 미소를 지으면서 태연하게 낙엽 위에 몸을 날려 헤엄도 친다. 자유로운 영혼이 저기에도 계셨네. 감탄하며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시화집을 읽어보니, 시인이 따로 없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오래전 타국으로 일하러 떠났던 젊은 아가씨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녀의 위로는 가볍지 않다.
깊은 가슴속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최근에 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씨처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다. 붙잡고 싶었던 기회, 관계, 목표, 돈 등 억지스럽지 않게 흘려보내고 있다. 작은 시도들은 이제 자리를 잡아간다.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제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준비 끝.
#자화상 #예술가의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