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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환 Aug 21. 2023

문을 열지 못한 자의 월경[越境]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당신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에 대한 농담 아닌 농담으로 어떤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 문 너머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굳게 닫혀있던 문을, 당신은 농담이라는 형태로 두드릴 수밖에 없었고 그런 농담마저 글로 읽어 볼 수밖에 없는 나는 문을 두드리던 당신의 표정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책 속에 글로만 적혀있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담들을 통해 당신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당신이 바라보는,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당신이 존재하는 세상과 당신이 두드렸던 문 건너편에 존재하는 내가 존재하는 세상 중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규칙마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 속의 수많은 당신들이 괴로워하는 근본적인 원인들이 당신의 정체성을 선택할 자유의 부재 때문 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당신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문을 열 수 없는 존재가 문 너머의 존재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보내는 신호였을 것이다. 당신은 아마 처절한 농담을 통해 문을 힘껏 두드렸으나, 결국 그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문을 열지 않고 문 너머의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완벽한 월경법을 생각해 냈으며, 그 방법은 죽음이었다.


당신의 짧은 소개를 책의 절반을 읽다가 우연하게 읽게 되었다.

그러자 책 속에 적힌 농담들이 당신의 유서같이 읽히기도 했다.



장례식이나 그 절차가 어떻게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런데 만약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라도 있다면, 나는 후자를 원합니다. 내가 태어나는 것을 고르지 못했으니 죽는 방식은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습더라도 그렇게 해주세요.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닌 방식으로 죽는다면,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낸다고 함께 화내지 마세요.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고 평생 회피하며 살았으니, 죽음 앞에서는 당당하길 바랍니다.
괜찮아요. 어쨌거나 죽은 사람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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