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대한 에피소드-4
4. 지인이 출판한 책-2 ; 책의 크기와 제목의 위치
1) 책의 크기
"책이 생각보다 작죠..? 금방 읽으실 거예요."
이렇게 작고 얇은 책을 직접 만져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지인들 중에서 책을 출판하시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번에 말씀드릴 분의 책은 독립서적이었다. 그녀가 출판한 두 번째 책이었는데, 첫 번째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번 책은 16년 동안 9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쓴 자신의 자취방에 대한 책이었다.
건축의 비전공자가 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책이다 보니 궁금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배송비가 2천 원가량 했는데, 작가분께서 직접 배송을 하다 보니 나의 주소를 보게 되었고 마침 동네주민이라 거의 7년 만에 얼굴을 보면서 안부도 물을 겸, 직접 전달해 주시기로 했다. 배송비 2천 원보다 훨씬 더 비싼 발포비타민과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함께 작은 쇼핑백에 담아 주시면서 책을 받았다.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들 중에, 책의 크기가 꽤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갈만한 크기의 [100*160] 책이었는데, 그 안에 9번이나 이사한 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하숙집과 고시원생활로 자취를 시작했던 그녀의 이사인생(?)에 잘 어울리는 책 크기였다고 할까.
2) 제목의 위치
책의 표지는 [202]라는 호수가 적힌 청록색의 철문이 반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되어 있었다.
책 전체가 세로로 찍은 커다란 현관문 사진이라면, 책을 펼치는 순간 자취방의 청록색 현관문으로 함께 들어가는 느낌일 것 같은데 90도로 회전되어 있는 이유가 혹시 따로 있는지 여쭤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단순히 세로로 사진을 찍지 않았었고, 가로로 찍은 사진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대답이었다. 당시 자신의 현관문 사진을 책표지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16년 동안 9번이나 이사를 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테니) 비례상 90도 회전하여 표지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배치하고나니 현관문 옆에 복도벽이 나오는 하얀 공간이 책 위쪽에 배치되고, 그 자리에 책 제목이 들어가는 공간이 자연스레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어보니 내가 생각한 대로 책 전체가 현관문으로 꽉 찬 표지였다면,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현관문 위에 함께 쓰일 텐데, 사진과 글의 겹침이 그리 자연스럽게 보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자신이 살아온 9개의 남의 집들에 대한 분위기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집들마다 엄청 드라마틱한 내용이 있진 않았지만 [물론 스릴러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꽤나 디테일하고 진솔하게 그려낸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물과 공간을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나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했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