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1
다자이 오사무
대학시절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란 책을 정말 좋아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보면 당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되고 그에 실망하고 상처받았던 일들을 연달아 겪어서 그런지 몰라도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아 보이는 세상에서 혼자 외로이 아파하는 요조의 퇴폐적이면서도 허무한, 어떤 면에서는 낭만적인 감성에 공감하고 위로받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도 너무 유명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인간실격이란 책이 더욱 유명해져서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표지로 출판되어 나오는 것 같다.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을 사진으로 그림으로 또 만화 캐릭터로도 그려낸 책표지도 서점에서 봤던 것 같고, 책의 분위기처럼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그림이나 패턴들이 그려진 표지부터 초판본 리커버라며 작은 일본어[한자] 제목과 함께 나온 표지도 본 것 같다. 심지어 괴기스러운 그림체의 공포만화를 그리는 이토준지가 그린 인간실격 이토준지 컬렉션마저 나온 걸 보면서 저렇게까지 사람들이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종류의 인간실격 중에서도 뭐니 뭐니 해도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 그려진 인간실격을 가장 좋아한다.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이 사실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표지에 그려진 인물 또한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에곤 쉴레 그 둘은 공통점이 참 많다.
동양과 서양의 퇴폐적인 이미지를 상징할 수 있는 예술가라는 측면에서 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설 속 다자이 오사무인 요조도 다케이치에게만 보여주려 그리던 자신의 익살 뒤 숨겨진 음산한 도깨비처럼 보이는 자화상을 그린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시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에곤 쉴레가 그린 자화상과 요조가 그린 자신의 자화상이 자연스레 오버랩을 이루는 점이 나에게는 꽤나 기분 좋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의 표지는 크게 작가의 흑백 사진이 있거나[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 명화들이 표지에 그려져 있는 경우로 나뉘는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하면 떠오르는 턱을 괴고 있는 유명한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최근 출판된 책들 중에 이 사진을 표지로 쓴 챗들이 꽤나 있다) 에곤쉴레의 자화상을 인간실격의 표지로 썼다는 점은 아마 그의 흑백사진보다 에곤쉴레의 자화상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인간실격에 나오는 요조라는 인물이 그린 자화상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쟁쟁한 세기의 작가들이 쓴 책만이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무려 4권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그의 사진이 표지에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내게는 다자이 오사무를 다른 작가들보다 더 특별하다 느끼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작은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