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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 Park 박민경 Oct 26. 2017

누나! 누나는 여자야, 남자야?

머리가 짧으면 남자, 길면 여자일까요

6살 둘째 딸아이가 머리를 짧게 잘랐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단발을 시도했다가 점점 짧아져 지금은 깡총한 커트 머리다.  

요즘 밖에 나갈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옆에서 그네 타며 같이 놀던 다섯 살 남자아이가 묻는다.

"누나, 누나는 여자야, 남자야?"

아이의 아빠가 당황해하며 "치마 입었잖아. 여자야."

나는 "호호호~여자 맞아. 누나라고 부르면서 왜 여자인지 남자인지 물어? 여자도 머리 짧을 수 있고, 남자도 머리 길 수 있다~!!" 호호~웃으며 말하지만 괜히 목소리를 한 톤 높이게 된다.


어제도 놀이터. 8살 남자아이가 남동생과 쪼르륵 달려와 딸아이 옆 그네를 차지하고 앉더니,

"너 여자야, 남자야?" 또 묻는다.

이번에도 형제 엄마가 "하..하하...여자애잖아. 치마 입었는데. 왜 그래~" 미안한지 머쓱해하며 대신 대답한다.


지나치게 솔직한 동생, "근데 머리가 너무 짧잖아. 못 생겼어!"

엄마는 더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고~예쁘기만 한데!! 하하...하...아이들이 여자는 머리가 짧으면 무조건 못 생겼다고 하고 머리가 길면 예쁘다고 하잖아요....." 안절부절이다.


아이의 머리를 짧게 자른 후 낯선 이들과 이런 대화가 드물지 않게 오간다.


처음에는 절대 싫다던 아이에게 짧은 머리의 장점 구백구십구 가지를 들어가며 살살 꼬셔서 단발머리를 시도한 후 아이도 편하다며 좋다하니 점점 짧아진 것인데 "너 남자야 여자야? 못생겼어!!" 같은 말을 자주 감당해야 하는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나도 아이처럼 6살 무렵에 커트머리였다. 타의에 의한.

하루는 엄마가 바쁘셔서 집 근처 미용실에 나를 혼자 보내셨다. 미용실 원장님은 "머리 자르러 왔니? 짧게 잘라 줄까?" 물으셨고 내가 입은 앙 다물고 고개만 까딱 하더란다. 아주머니는 짧은 단발이던 내가 예쁘장한 남자아이인 줄 알고 샤워하고 물기만 탈탈 털면 될 정도의 숏 커트를 쳐주셨다. 여전히 같은 동네에서 미용실을 하고 계시는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시면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너무 미안했다고 깔깔 웃으신다.

    

작년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4학년이 된 큰 딸은 미국에서 하던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마침 학교에 토요 방과 후 교실 축구 수업이 있어서 신청하려고 보니 여자아이는 아무도 없다. 미국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여자 친구는 학교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던 아이 중 한 명이었고, 그 친구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자주 축구를 하며 놀았기 때문에 갑자기 축구를 포기하기가 영 아쉬웠나 보다. 결국 축구 수업에 등록을 했고, 일 년 간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했다. 축구를 한다고 하면 대개의 반응은 "여자애가 웬 축구?"이다. "멋있네!"라고도 하지만 "경력 안 되는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거 시켜 줘"라는 충고도 들어봤다.

아이는 지금도 종종 남자아이들과 점심시간에 우르르 몰려나가 팀을 나눠 축구를 한다. 잘하는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땀 흘리고 뛰어 놀기에는 별 문제없다. 아이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 기회가 거의 없는데 운동할 때만은 남자 여자라는 구분선 없이 그냥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이 놀 수 있어 좋단다.   

 

 이 중 가장 오른쪽의 머리카락이 긴 단 한 명만 남자아이다.


영어는 반드시 성별을 구분하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다행스럽게 느꼈던 적이 한 번 있다. 딸아이 친구인 프리다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프리다의 이모 가족도 함께였는데 이모의 배우자는 '머리카락이 길고' 근육이 어마어마한 소방관이었다. 내가 긴가민가 의문을 가질 때쯤 대화 중에 가족들이 she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고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얼마나 많은 "남자니, 여자니?" 질문을 받아 보았을까. 또는. 아무도 묻지 않았을까.


내일은 아이와 놀이터에 앉아 핫초코라도 한 잔 하면서 앞으로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심도 깊은 대화를 해 봐야겠다.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www.facebook.com/MKLivingUSA)  팔로워 1400명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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