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0원을 버리지 않게 해준다는 것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보면 좋을까를 고민하면서 30분 정도를 보내다가, 결국 유투브로 넘어가서 20분으로 요약해 놓은 지무비의 채널을 보게되고 그 20분마저도 지겨워서 줄기차게 쇼츠를 보게되는 것이 지금의 영상콘텐츠를 즐기는 나의 패턴이 되어버렸다. 유투브오리지널을 보면 유투브뮤직도 즐길 수 있으니 유투브오리지널을 구독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청난 만족도 없지만 사실 어차피 킬링타임용이니 그렇게 큰 불만족도 없다.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시청패턴이면 정확히 월 구독료가 얼마인지도 기억못하는 넷플릭스는 해지하는게 좋지 않을까라고. 한달에 3만원 언저리쯤으로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이런 패턴이면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돈낭비가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를 해지해야 겠다."라고 마음먹은 순간 또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왔다. 마음은 흔들렸으나 어차피 보지도 않을 것 같아 새롭게 올라온 콘텐츠만 보고 해지하기로 했다. '발레리나'라는 2시간이 안되는 영화 콘텐츠가 올라왔다. 난 넷플릭스를 해지 하지 않았다. 얼마후에 '독전2'라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역시 난 넷플릭스를 해지 하지 않았다. 또 시간이 지나 '황야'라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여전히 난 넷플릭스를 해지하지 않고 있다. 최근 6개월간의 3개 정도의 영화콘텐츠를 본 후에 난 앞으로도 넷플릭스를 해지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넷플릭스를 해지 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해 졌다. 넷플릭스는 최고, 최다의 콘텐츠를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구독한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마 넷플릭스같은 플랫폼이 없었다면 난 지난 6개월간 저 세편의 영화를 아마도 영화관에서 보았을 것이고, 영화티켓값 3만원(2인), 팝콘 1만원, 주차비 5천원 정도를 한 영화당 지급했을 것이고, 세편의 영화를 다 보았다면 13만 5천원 정도를 소비했을 것이다. 거의 3년치 OTT 구독료와 비슷한 금액을 영화 3편으로 날려먹을 수 있었다. 넷플릭스 덕분에 가계 경제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넷플릭스는 소비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위대해졌다. 반면에 한국 영화는 어쩌다 이 수준이 되어 버렸었을까? 한국 영화는 코로나 이후로 위기를 맞았다고들 한다. "OTT때문이다" "영화티켓값이 너무 비싸다" 등등 많은 이유들을 내세운다. 대부분 한국 영화를 감싸고 있는 환경적인 이유의 변화때문에 한국 영화가 어렵고 시장이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환경적인 요소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과연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때문에 한국영화는 이렇게 되었을까? 2~3시간 정도를 끌고 갈 수 있는 스토리, 그것을 보여주는 배우의 연기,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연출 뭐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OTT의 라인업을 채우기 위한 영화만이 계속 나온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발레리나'와 '독전2'가 여실히 그것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현재를 알고 싶다면 꼭 이 두편의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머니게임은 우리의 문화소비 패턴을 보다 더 경제적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문화생산 패턴을 보다 더 저열하게 만들었다. 한국 영화가 스스로 빛날 수 없다면 빠른 시간안에 넷플릭스의 진열장에서 한국영화는 빠질 것 같다. 아니면 진열장에 넣기 위해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걸까? 돈을 내고 넷플릭스에 입점해야 하는 한국 영화들이 생긴다면 구독료가 좀 떨어질 수 도 있을테니? 그 상황이 되면 누구도 영화생산에 돈을 내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추세도 영화라는 시장에 돈을 대는 것이 이미 촌스럽다.
* '발레리나' '독전2' '황야'의 공통점이 있다. 감독 혹은 제작자의 '私(사사로울 사)'가 가득하다. 사심은 다른곳에서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