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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 Jun 18. 2019

거창한 의미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해 걸어보자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걸어볼까. 걷기에 빠진 하정우를 읽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나가고 싶어 졌다.


하정우에게 걷기란 단지 두 발로 땅을 딛고 앞으로 나가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아플 때도, 쉴 때도, 생각이 많을 때도, 숙면을 취하고 싶을 때도, 살을 뺄 때도. 계속 걷는다. 애초에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만병통치약을 선전할 때 같이 모든 문제 상황에서 해결된다는 식의 그의 찬양은 콧방귀를 뀌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걸으면서 생각한 통찰은 가볍지 않다.


그는 걷기에 대한 고통이 왔을 때 '의미'를 찾으려 하는 자신을 보고 생각한다. 왜 갑자기 의미를 찾으려 하는지. 또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떠한 고통도 아닌 '무의미'라는 것을.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은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 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 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나도 주말 아침마다 시간을 내 걸어보려 한다.

온전히 나만의 감각에 집중해 스스로를 아끼는 휴식을 만끽해 보고 싶다.


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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