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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Sep 05. 2022

'플러스 알파를 하라!'

20220905

아마도 부서 직원 관리 차원에서 윗선에서부터 내려온 지시일 것이다. 매달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일종의 '생산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부장님과의 일대일 면담. 여태까지는 개인이 설정한 주제, 예를 들면 뭐 잠을 못 자서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던가 슬럼프가 온 것 같은데 극복 방법을 모르겠다던가, 일을 더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던가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 좋아 생산적 해결이지, 주제 설정부터가 그저 노동 생산이다. '무조건' 모두 주제를 설정해야 하니까 괜히 없는 문제를 만드는 기분도 들고. 진짜 개인적 문제를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고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주제를설정하면 안되니, 적당히 미션 성취가 가능하게끔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는 '답이 정해져있는' '적당한 주제거리'를 설정해야한다. 그저 새로운 형태로 추가된 업무일 뿐. 애초에 그 면담으로 '생산적' '해결 방안' 둘 중 하나도 근접한 것이 도출되지도 못한다) 이번 달은 연초에 본인이 설정한 '개인 업무 달성 방안' 뭐 이런 내용이었다.


연초에 개인에게 할당된 이런저런 업무 목표 목록을 보고 이런 식으로 해라 저런 식으로 해라, 조언을 하시고 나는 듣는 구도였기 때문에, 그의 대화 지분율이 85퍼센트 정도였는데, 듣다 보니 한마디로 이거였다.

"플러스알파를 하여라."

그러니까, 내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 이렇게 목록으로 쓰여있는 목표만 달성하면 안 된다는 것. 목록으로 주어진 업무 목표는 최소한으로 해야하는 베이스라인이라고. 이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야한다고. (업무 관련해서는 문서화 그렇게 좋아하면서 이런건 문서 이외의것으로 하기를 바라는거 이해안간다구. 이것은 베이스라인이며 이것까지 하면 조금 더 하는거다, 라고까지 문서에 그냥 쓰고 시작은 외않되) 나는 주어진 목표를 다 했는데 주변 애들이 나보다 더욱더 열심히 해서 두각을 드러낼만한 무언가를 성취하면, 나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는 것. 그러니까 한마디로 주어진 것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것보다' 더욱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십이지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반감에 내뱉고 말았다.

"그 말은 상대평가라는 말씀이세요?"

"상대평가는 아니고, 사실 예전에는 완전히 상대평가여서 등급별로 몇 명씩 다 정해져 있어서 비슷한 성과에도 평가가 한 명은 낮고 한 명은 높게 갈렸는데, 요즘에는 절대적 상대라고 해서 구간별 비율을 정해놓지 않고 ,,,,뭐라 뭐라 뭐라"

 한두 번 속아보나. 그냥 절대적 상대=상대평가인 거 알고 있다.

"만약 이 업무 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반감이 형성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난 적대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며 말하는 나 자신...

"그러면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

'고과가 낮아진다. 그런 되도않는 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말이다.


근데 그분의 말에 타격이 아예 없다. 고과가 전혀 무섭지가 않다.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어차피 평생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고과 잘 받는다고 나를 책임져 줄 그런 자애롭고 인심 좋은 곳은 아니니까. 업무 목표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업무에 대해 '주인 의식', '흥미'가 전혀 들지 않은 나에게, 그저 주어진 업무를 월급 받는 1인분 만큼만 딱 하고 소리 소문 없이 퇴근만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찬 나에게, '열정을 다해 플러스 알파를 하라'는 말에 다소 심한 반감이 끓어오른 나에게, 새삼 낯선 기분이 들었다. 거진 십수 년을 이 한 몸 불살라서 목표를 향해 열정을 다해 성취하려는 성향을 가졌으니까.

 인플레이션 때려 맞은 저세상 물가, 저세상 집값, 끊긴 사다리, 희망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젊은 세대. 하락하고 주식 코인 등 한방에 인생 역전하는 것이 더욱더 가능성이 있고 현명하다는 인식이 만연한 요즘. 불가피하게 노동가치를 믿지 못하는 z세대는 고과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고과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나는 Z 세대였던 것인가가.. 하는 기분. (아, 아니다. 'Z세대는 고과에 신경 쓰지 않는다'가 명제라면 대우는 '고과에 신경 쓰는 사람은 Z세대가 아니다'니까 괜히 어린 세대에 낑겨가기 실패...라는 결론?)


반감보다는 사실 '놀라는 감정'이 더 컸는데, 경쟁의 부작용 악영향에 대해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떠들어댔는데 아직까지도 경쟁에 등 떠밀고 숫자로 한 줄 세우기 하는 문화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작 3년 간의 독일 살이 했다고 내 노동 환경에 대한 디폴트 값이 (간간한 실적 경쟁을 제외한 경쟁구도 없이) 개인의 성취에 초점을 두는 독일 환경으로 설정된 걸까. 옆에 있는 동료가 적이 아닌 친구로서 서로 의지해 나가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고 사실은 부러웠으니. 아니면, 3년을 나가 있는 동안, 혹은 6년 남짓 대학원 생활 동안 우리나라도 나름 선진화되었고 경쟁보다는 화합이 더욱 생산성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수십 년을 그렇게나 속아서 경쟁으로 달려왔더니 남는 것은 번아웃과 패배감 우울감 따위의 자신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결과뿐이라는 걸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서로 의지하며 여생을 걸어가는 존재인 친구들을 '적'으로 두니 삶은 지옥이 됐고, 그렇게 경쟁에서 살아남아보니 남는 것은 공허함뿐 부질없는 것을 몸소 느껴버린 것이다. 지친 것이다. 경쟁이라 하면 신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경쟁을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라니. 하얗게 불태워서 더 이상 연료로 사용될 수 없는 잿더미에 백날 지펴봐라, 불이 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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