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xsoul Dec 18. 2022

여유로운 삶에 대한 뻘글

20221218

"자기 전에 유튜브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가고, 그러다가 잠들면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테니스를 가고, 집에 와서 씻고 8시 30분까지는 출근하고, 퇴근 후엔 수영에 갔다가 집에 오고, 가끔 일주에 한두 번 사람들을 만나서 모임에 가고, 주말에는 발레 배우러 가는, 집에 테레비도 없는 J의 망언에 가까운 말에 모두가 한 마디씩 보탰다. 손흥민이세요? 태릉선수촌 선수세요? 집에 테레비도없으면서 자기 전에 유튜브 조금 보는 게 어떻다고. 네가 지금 먹는 이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유튜브로 다 알 수 있는데! 유튜브가 얼마나 유익한 게 많냐. 마지막 발언은 팀이 없어지는 바람에 일도 없고 회사 가서 사내 이곳저곳 비치 된 RPG, 다트 게임 등등도 하고 시간을 열심히 잘 때우다가(?) 집에 와서 테레비는 백색소음으로 틀어놓고 그 옆에서 유튜브로 풍족한 시간을 소비하며 잠드는 유유자적한 삶을 무리 없이 살아내는 K의 말.


열심히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보이는 J에게 핀잔은 줬지만, 사실상 캐릭터에서 강박이 빠지기 서러운 것은 나 자신'이'다. 아니, 나 자신이'었'다. 아니 다시, 나 자신'이'다.


출퇴근 시간이 있고 '깔끔한' 계약서를 통해 월급 받는 직장 같은 사회생활을 독일에서 처음 시작한 나는 여가생활과 취미생활 또한 그곳에서 처음 맞이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집에 틀어박혀서 소설책 한 권을 내리읽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걸 난 꽤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귀국을 하고 어언 10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그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강박'이 든다. 주말에 작정하고 책 한 권을 가지고 스타트를 끊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어디서 들어서는 건지, 도저히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선비처럼 여유롭게 안장서 책이나 읽고 있을 때인가, 뭔가 뒤처지는 것 같다, 먹고사는데 도움도 안 되는 책 따위보다는 일생에 더 중요한 어떤 걸 처리해야 한다' 하는 근본적인 답 없는 생각들. 그 '중요한 어떤 걸' 규정하지도 못하면서 이내 차오르는 조급과 불안 때문에 곧바로 책을 덮고 일어나서 돌이켜보면 기억도 안 나는 오만 일들만 사부작사부작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니면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이러니한 한 가지. 독일에 있을 때와 귀국하고 회사에 다니는 현재, '물리적'인 시간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독일에서 연구소에 출근할 때에도 월-금에 오전 7시 정도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하고, 5시 반-6시 반 사이에 퇴근을 하고 퇴근길에 장 봐와서 밥 지어먹으면 저녁 7시-7시 반. 운동하고 놀 것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말에는 일 하지 않는 것도 동일 환경 (이것이 한국에서도 가능한 것이 나의 팀 걸리는 운이 아주 좋았기 때문인데, 아마도 아직 업무에 익숙지 못한 나에게 그나마 자비가 베풀어져서 이 정도인 것이라 앞으로 어떤 부서로 이동이 될지, 야근을 얼마나 하게 될지 업무 강도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현재는 회사밥을 주로 먹기 때문에, 독일에서 매일매일 장을 보고 요리를 했던 시간도 사실상 한국에선 아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나 기차가 밥먹듯이 지연되는 독일의 환경이 어떻게 보면 시간이 버려지기 더욱 좋은 환경일 텐데... 그래서 이런 질문에 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정신적 '각성 상태'가 꽤나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결론을 낸다. 독일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일 처리도 느리고, 업무를 할 때에 마감 기한도 아주길고, 삶의 이유가 '일'이 아닌 노동 환경 때문인지 개개인에게 업무 부담이 적다. '어느 기한' 안에, '무조건 성공'시켜야만 하는 것도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을 할 때, 혹은 생활 반경 전체적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삶이 기본적인 것이다. 누가 요구하는 잔잔바리 일처리는 대개 몇 시간 내에 혹은 몇 분 내에 달라는 식이고, 어떤 프로젝트의 기한이 몇 달 단위로 아주 짧을뿐더러 그것은 꼭 '성공'시켜야만 하는 것이 디폴트값이다. 답정너 그 자체. 식사 시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에 쫓겨 영양섭취만을 위해 시간 내에 정신없이 때려 넣는 수준. 그렇게 일분일초 급급하게 경직되고 긴장 한 채 각성 상태로 살다 보니, 퇴근을 해도 주말이 와도 그 각성 mode가 휴식 mode로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다. 간만에 모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간 그곳에의 수많은 사람, 시끄러운 음악소리, 눈을 가득 메우는 온갖 상품과 물건, 광고 등등은 기존 형성 된 각성상태와 공명을 이뤄서 불어나기만 한다. 앞으로 온전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의문을 품기도 전에 월요일 아침이 된다. 이렇게 급급하게 쫓겨사는 삶을 고작 수개월밖에 안 했는데도 이렇게 지치고 탈진할 것 같은데 도대체 다들 몇 년씩 회사를 다니고 사는 건지.


물론 내가 독일에서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갈 곳도 없고 특정한 누구를 만날 약속도 없었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반면, 이곳에서는 현지인이기 때문에 생기는 크고 작은 수많은 역할들이 있어서 보다 더 바쁘고 여유가 없는 것이었을 수 있다. 혹은 극명히 다른 사회체제로 인해 실제로 지금은 여유를 느낄 틈이 전혀 없는 게 이치에 맞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혹은, 타고나기를 생각 많고 예민하기에 조금 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수많은 자극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현지인으로서 그곳에 있거나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있는 경우는 실험 불가능한 split이다. 환경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반대의 경우는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고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느낀 그대로가 진실이다. 편견, 성급한 일반화라 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박제된 선입견은 이미 나를 이루게 되어버렸다. 그렇다. 이것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마도 강박을 줄이고 보다 더 심적으로 여유로운 일상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미라클 모닝에 대한 뻘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