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xsoul Jun 28. 2022

소화를 위한 최소화 - 카톡 친구

20220628 

 이 또한 출발은 독일 살이로부터였다. 독일 생활한 지 한 1년 정도 지난, 지금으로부터는 대략 2년 전 정도였을까, 언제부터인지 화장실에 조금 길게 갈 때마다 남의 카톡 프사를 한 명 한 명 전부 다 훑기 시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화장실에서 나와서도 남은 사람들까지 마무리하는 데에 한 시간 남짓 시간은 공중분해되었다. 그렇게 ㄱ부터 ㅎ, A 부터 Z까지 모든 사람을 다 스캔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우울감'이었다. 정보 습득의 이익보다 남의 잘난 모습 보며 드는 상실감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곧잘 우울해하는 쫄보인 나는 원래 인스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데, 기껏 인스타를 막아놨더니 그걸 카톡 프사에서 똑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에 '현타'가 왔다. 카카오톡 친구 660명. 그중에는 이미 이름을 봐도 기억이 안 나고, 심지어 프사에 있는 얼굴을 봐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렇게 시간 허비, 상실감과 위화감,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의 순환을 몇 번 겪고 나니, 명백하게 깨달았다. 나는 너무 많은 카톡 프사 친구를 다 소화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많은 타인들의 정보로 체했다. 


 그렇게 한번 지워보기로 한 것이다. 적당한 기준? 당연히 일상에 침투해 있는 사람들은 숨김 대상이 아니다. 가족, 늘 닿아있는 친구들, 업무로 연락이 필요한 사람들. 당시에 업무는 카톡을 사용하지 않는 외국 사람들과 했으니 앞의 두 케이스만 따져보니 열명 남짓이었다 (와,,, 나 대인관계 머선일...). 명백히 제외할 대상도 어렵지 않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근 3년간은 연락도 하지 않은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들. 그 이외의 부류가 의외로 어려웠는데 그래도 기준을 세워봤다. 카톡 친구 목록을 봐서 떠올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하고 싶어 지고, 당장 그럴 수 있는 사람. 아무리 잘난 모습을 업데이트해도 '이 사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계속 잘 지내면 좋겠다' 하는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

 660명이던 카톡 친구는 한 번의 필터링으로 200명 남짓 남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화장실에 조금 오래 머무를 때마다 오히려 필터링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150명이 되고, 100명이 되고, 70명이 되고,, 그렇게 현재 56명 남짓 남았다. 무언가 탁한 머리가 맑게 개인 기분.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한다. 내가 뭐라고 남을 판단하고 내 목록에서 사망 선고를 내리는지. 나는 참 냉정하고 정이 없다. 인류애가 너무 없다. 너무 가혹한 거 아니니. 정 반대 입장에서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삭제당한다면 생각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오잉? 근데 사실 의외로 기분이 전혀 안 나쁜 것이다,,). 이런 미안한 마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이 아닌 내가 정하고 내가 컨트롤하는 그런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기분. 은근한 쾌감. '00 씨, 죄송하지만 당신은 저와 다음 라운드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00 씨, 합격입니다' 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내 의견과 내 감정에만 집중해야 한다. 찌질한 쾌감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존감 지킴이였다. 기본적으로 내가 목록에서 숨김 처리한 그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약해졌고 타인을 받아들일 Capacity가 딸리게 됐고, 소셜 에너지가 급감했을 그뿐이다. 내가 그들을 숨김 처리한다고 해서 그들이 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내 카톡 친구가 몇 명인지 누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어차피 없다.  


 그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삶을 살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보통 외국은 한국보다는 한적하고, 조용하고, 고요하고, 이벤트는 없고, 주변에 만날 사람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머나먼 고국 타인들, 늘 함께하고, 늘 이벤트가 존재하고, 늘 발전하는 모습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끊임없이 자존감이 낮아지기 쉬운 환경인 것 같다. 나와 똑같은 증상(수백 명 카톡 친구의 프사를 끊임없이 보고 우울의 늪에 빠지는 증상)으로 고생하는 타지에서 학위과정 중인 친구 하나에게 이 방법을 추천을 했다. 그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친구를 지워,, 처음에 듣고 반신반의했다. 그러던 그는 어느 하루 나처럼 화장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서 현타라도 맞았는지, 85퍼센트의 카톡 친구를 날리고는 나에게 연락이 왔다. "와 소름. 정신건강에 너무 좋음. 카톡 친구 숨김 이후 행복해졌다는 증언 계속 잇따르는 중." 그의 친구들에게도 전파를 한 모양이다. 


 불변의 법칙처럼 고정된 목록은 아니다. 절대적이지는 않다. 친구 목록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분명히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외국에서 우연히 만날 기회가 생겨서 같이 놀고 그 이후에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든지, 아는 사람이 겹치게 되는 등의 특수한 계기로 이전보다 조금 가까워졌다든지,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 너무 죽이 잘 맞아서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든지 하고 느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간간이 있을 것이다.  


고기도 소화를 잘 못하더니, 이제는 카톡에 저장된 사람들의 사진들마저 소화를 못 시키는 게,, 진짜로 나이가 들어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조금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어쩌면 내가 어릴 적 정말 많은 대단한 사람들과 수없이 나눈 교류가 충만해서, 너무 충분했어서 이제는 관계망이 줄어도 만족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인생의 일정 구간을 함께 보냈던 그 사람들에게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오늘은 그들의 프사가 더욱 행복한 사진으로 업데이트되기를 바라본다. 아, 물론 숨김 친구 목록에 있는 채로!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마음은 불편한 몸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