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hyeonju Sep 07. 2021

육아별의 어린 공주

아기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는 초보 엄마와 초보 아빠의 하루


지구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다. 

멀리 떨어진 해왕성의 하루는 16시간이고- 

샛별이라고도 부르는 금성의 하루는 243일로 일 년인 225일보다 길다. 

나의 하루는 어제는 6시간 남짓이었고, 오늘은 4시간 하고도 대략 30분이다. 


나는 육아별에 사는 엄마다.






  이곳의 하루는 그때그때 다르고, 시간은 언제나 띄엄띄엄 간다. 시계는 철저히 아기에게 맞춰진다. 아기의 시간이 흐를 때 내 시간은 멈춰있다.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을 가려다가도, 그리고 잠을 자다가도. 만유인력의 법칙은 '맘'유인력의 법칙으로 작용해 아기는 하루 내내 엄마를 찾고,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안겨있으려고 한다.   

  운 좋게 낮잠이 길어지는 날에는 내 하루도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어제 같은 날이 그렇다. 이 별에 오기전 하루가 24시간일 때, 내 시간이 오롯이 내 마음대로 쓰였을 때를 돌이켜보곤 한다. 육아가 남의 일이던 시절, 나는 이미 어른이었고 한 생명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를 쉽게 잊고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저절로 큰 줄만 알았지 내 시간에 깔려있는 엄마의 보살핌과 아빠의 돌봄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리고 남편은 우리의 부모님이 살았던 시간을 다시 살고 있다. 






  육아별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나의 하루는 짧고 또 그마저도 자주 멈춘다. 그래서 힘이 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저 웃기로 한다. 


  10년 전의 내게 "너를 닮은 볼이 통통한 아기를 키우게 될거야", 라고 말해준다면 10cm 굽의 요란한 구두를 신은 나는 삐딱하게 기대며 "거짓말. 나는 누구를 돌볼 만한 깜냥이 안 돼." 라고 말할거다. 10년 후의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린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마도 "참 귀엽고 예뻤는데, 그때가 그립네." 이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결국은 오늘을 더욱 꽉 안아주는 것 말고는 없다. 아쉬움이 내일에 비집고 들어 올 틈을 남겨두지 않으려면. 


  누구를 낳아서 키우고 돌봐 줄 그릇으로는 한참 모자라다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의 시간조차 내려둘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남편의 태양처럼 뜨거운 사랑과 지지 덕분이다. 몇 차례의 큰 위기를 넘기고 품에 안은 아기를 보고도 울지는 않았던 남편은, 퉁퉁 부어오른 몸으로 말도 제대로 못 잇던 나를 보고서는 펑펑 울었다. 육아별에서 나의 시간이 아주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건 남편이 든든하고도 묵묵히 자기 몫의 시간을 채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와 함께 별을 가꾸고 키워내는 파수꾼이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아빠가 되었다.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그저 푸르고 아름다운 행성이듯 매일이 전쟁같은 육아도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참으로 성스럽고 숭고한 일이다. 손톱보다도 작았던 존재가, 열 달이 지나 품 안에 들어올 만큼 자라고 그로부터 또 일 년이 흘러 어느새 제 발로 서서 걸어와 안길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감동은 이 우주의 것이 아니다. 


  가장 작고 또 가장 소중한 우리 별, 반짝반짝 우리 딸. 곤히 잠든 작은 어깨를 조심스레 토닥이다 괜히 웃어본다. 가끔은 내 시간이 멈춰 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에 우리의 행복은 늘 선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은 개기월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