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도 늙음도 뚜렷하지 않은 경계구역에서.
이렇게 나의 아이는 또 자랐고 거울 볼 시간 없이 지내던 나는 이제 젊음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청춘이라 하기엔 이제 나이를 너무 먹어버렸고 옷과 가방과 화장으로(원래 파우더 하나 입술 틱(?) 하나 업지만) 꾸미기엔 너무 궁색해져 버린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투명인간의 삶! 누구도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것 같은 젊음도 늙음도 뚜렷하지 않은 그 경계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젊어지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이제 남은 것은 중년과 노년의 삶뿐이니까. 경계구역의 나이에 들어선 이들에겐 여러 가지 선택이 있는데, 나는 지적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좀 가꿔보기로 했다. 농구공같이 어디로 뛸지 모르는 참 어려운 성격은 변하기 힘들 것 같아 포기한 지 오래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지. 내 성품이 고상해진다거나 고와진다면 죽을 때가 됐구나 하겠지. 스물다섯 살에 런던 패딩턴의 나의 작업실이자 침실이자 거실이었던 작은방 한켠에서 머리를 밀었었던 적이 있다. 영화에선 멋있게 거울 앞에서 한 번에 주욱 밀리던데 그것은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나의 바리깡이 그리 비싸지 않아 성능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내가 바리깡을 잘못 써서 일수도 있었겠다. 이마의 한가운데서 시작한 바리깡의 머리 숲으로의 저돌적인 전진은 조금 가다가 말려들어간 머리카락들에 '턱'막혀버렸다. 앞에서 뒤로 열 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열 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열 번 뒤에서 앞으로 열 번을 하고 나서야 나의 맨들맨들한 머리 피부가 머리카락 껍질을 벗겨내고 나왔다. 너 참 좋겠다! 얼마나 답답했을꼬. 머리카락 없는 나의 얼굴은 도톰한 광대가 더부각되었고 민둥민둥 머리카락 없는 참 어색한 스물다섯의 어떤 평범한 여자사람의 얼굴이다. 예쁘지 않은 얼굴이라 다행이었다. 예쁜 사람 중엔 삭발해서 예쁜 얼굴이 더 부각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삭발의 취지가 무색해져 버리니 얼마나 난처한 일인가. 기분이 참 좋았다. 어째서 스님들이 머리를 밀고 수행을 하는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거추장함이 없어 항상 시야가 밝았으며 머리카락을 감고 말리는 손질의 시간을 아껴주었으며 어떤 옷도 이상하게 안 어울려 쇼핑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꼭 해보고 싶었던 삭발이라는 것을 찬란하던 내 젊은 날에 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난 삭발을 할 것이며 자전거로 하이드파크를 매일 지나갔을 것이며 시큼한 플레인 요구르트에 카레 파우더를 듬뿍 뿌려 넣은 인도 카레를 끓여 고수를 수북이 얹어 먹었을 것이다. 왜냐면 난 고수의 강하고 이질적인 향을 너무나 사랑했으니까.
스물다섯 삭발식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