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하나 ~ 열아홉: FM 첫째딸의 노잼 라이프 2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조차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재소환된다. 대부분 나에겐 별일 아니건만 상대방에겐 임팩트 강한 에피소드다.
- 야, 나는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어. 너 중간고사 끝나고 우리랑 같이 영화 보다가, 엄마 온 전화 받고 울면서 중간에 나갔잖아. 남동생 데리러 가야 한다면서. 엉엉 울면서도 가야 된다고 나가는 걸 보고 진짜 충격 받았다니까!
친구 J의 과거 소환에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아뿔사. 그 말을 외치자마자 봉인된 기억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로 한 15살 어느 날이었다. 유치원생 남동생을 데리고 집에 가는 것이 방과 후 루틴이었던 나는 그날만큼은 엄마에게 사전 허락을 받았다. 임무 면제권이었다. 오늘 너에게 반나절의 자유를 허하노라~. 문제는 해방을 맞은 중학생에게 반나절이 너무 짧았다는 거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은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나만 빼고. 내가 받은 임무 면제권의 유효기간은 점심시간까지였으니까. 사용기한이 소멸된 면제권을 들고 음식점을 나와서 나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친구들의 설득을 못 이기는 척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짜릿함과 죄책감, 그 사이의 감정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끝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친 듯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가 허벅지에서 따끔거렸다. 결국 영화관을 잠시 나와 받은 전화에 엄마는 불호령을 쏟아내셨다.
- 너, 왜 아직도 밖에 있어!!!!!!!!!!!!!!!!!!!!!!
그렇게 나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엉엉 울면서. 그날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걸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점심이 햄버거였는지, 피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서럽도록 보고 싶었던 영화가 뭐였는지조차.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유치원생 아이를 둔 선배들을 가까이에서 보곤 한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날 내가 땡땡이쳤던 한 시간이 엄마에겐 억만년처럼 길었다는 것을. 유치원이 방학을 맞으면 공백 없는 육아 스케쥴을 위해 '부부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하는 워킹맘과 라테파파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엄마가 보인다. 밀려드는 환자들과 언제 데리러 오는지 확인하는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 사이에서 진짬 뺐을 모습이 그려진다. 계약을 어기고 전화를 쌩 깐 계약불이행 파트너를 애타게 찾았을 그 모습이.
그날의 에피소드는 이제는 엄마와 나에게 우스갯소리가 되었다. 엄마는 자기가 언제 그렇게 화를 냈냐고 슬며시 발을 뺀다. 그러면서도 '그래~ '그 때는' 너 참 말 잘 들었지' 하신다. (지금은 더럽게 말을 듣지 않는다는 눈빛을 함축한 채).
지금의 100분의 1만큼도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는 '영화 회식' 중간에 집에 가는 길이 서러워 꺼이꺼이 울면서도, 엄마가 가라면 기어이 가야 하는 줄 알았던 FM 큰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