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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스 최민호 Dec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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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편 파리의 가로수

5. 파리의 가로수


오후 3시 55분. 

파리.     

프랑스인과 일본인이 승객의 반이 넘는 에어프랑스 보잉기를 타고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주곤중은 출구를 나오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파리의 공기를 맛보고 싶었다. 

대기에는 파리잔느의 향내가 섞여 있는 듯 했다. 샤넬 NO.5...      

택시로 노보텔 호텔로 향했다. 

거기에서 노명찬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노명찬은 농림부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파리에 본부를 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2년 전부터 파견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 밖에 보이는 플라타나스 가로수를 보면서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도로 풍경에 약간 아쉬움이 생겼다. 

기다리던 이국적 정취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에서의 이국적 정취는 나무를 보면서 비로소 느껴지는 법.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은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외자를 유치한다’며 가로수마다 관리번호를 붙여놓고 정성을 기울였다는 말이 떠올랐다. 

가로수의 조경이 도시의 품격을 나타낸다.      


플라타나스.     

시골길 뚝 방을 따라 쭉 심어져 있던 어린 시절 추억의 나무. 

지금도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는 키 크고 이파리 넓적한 늠름한 저 나무.주곤중은 예전 상해 여행할 때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 혼자 빙긋이 웃었다. 

저 나무를 중국에서는 프랑스 뽕나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중국 뽕나무라 한다지...      

플라타나스는 중국이 원산지인 뽕나무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이 나무를 19세기 프랑스인들이 반출시켜 수종개량을 한 것이 플라타나스가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이 나무를 중국 뽕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플라타나스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에서 들여온 뽕나무라 하여 프랑스 뽕나무라 불렀다는 것이다.      

같은 나무를 중국에서는 프랑스뽕나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중국뽕나무라 한다고 했다.      


뽕나무? 

그것은 풍나무를 잘못 말한 것이리라. 

플라타나스. 

그것의 우리말은 버즘나무이다. 

풍나무와 버즘나무는 같은 조록나무과에 속한다. 이 과의 나무는 유럽남부와 인도, 아시아에까지 걸쳐져 있다. 

중국을 원산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노명찬은 호텔 정문 쪽을 바라보며 서성거리다가 회전도어로 들어서는 주곤중을 발견하였다. 

둘은 악수와 깊은 포옹을 나누고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지금도 도청에 계시지요. 형? 요즈음은 뭐 맡고 계십니까?”     


“최근에 자리를 옮겼어.”     


공무원임용 동기이지만 나이가 많은 주곤중을 노과장은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주곤중이 노명찬을 만난 것은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국비 유학동기로서 나란히 대학원과정에 다니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디?”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조직위원회 전시유치부장.”


“그게 뭡니까?”


“안면도에서 국제 꽃박람회를 해요. 그래서 여기 온 거야, AIPH총회 참석하러...”


“AIPH?”


“국제원예생산자협회, 불어 약자야. 국제꽃박람회를 주관하는 곳이야. 말하자면 꽃박람회의 BIE(국제박람회기구) 같은 것이지. 

그래서 해마다 총회가 열리면 참석해서 진행상황을 보고도 해야 하고 홍보도 해요.      

내일부터 총회가 앙쥬에서 열리는데, 내가 우리 꽃박람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해서 브리핑해야 하거든.”


“앙쥬라고요, 거기 조용한 곳이죠. 귀족들 성도 많고 와인이 유명하지요.

근데 출세하셨네. 지방공무원이 국제회의 총회에서 브리핑도 다하고…. 

꽃박람회도 무슨 총회 같은 것이 있습니까, 몇 개국이나 참석하는데요?”


“우리나라가 23번째 회원국이야. 안면도 꽃박람회 공인받으면서 1998년에 가입했으니까.”


“근데 국제 꽃박람회를 왜 안면도에서 합니까? 안면도에 꽃이 많이 납니까? 여기도 꽃박람회 같은 것은 더러 열리는데 저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나라마다 하는 이유가 달라. 자세한 얘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슬슬 저녁때도 되고 했으니 식사를 좀 하자고. 멋진 곳으로 안내해 봐.”


호텔을 나오면서 조 부장은 로비에 있는 화사하면서도 기품있게 놓여있는 대형화분을 눈여겨 보았다. 한국에서는 못 보던 꽃이었다. 개화기인지 많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가지마다 꽃의 색깔이 달랐다. 

유심히 살펴보니 흰색과 붉은 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져 있었다.

접붙이기를 정교하게 한 것 같았다. 아니면 유전자 합성?     

프랑스 3색 국기 색깔 아닌가?...      


둘은 호텔 밖을 나와 노명찬의 안내로 지하철 메트로를 탔다. 

루브르리볼리역.  

노명찬이 예약해 놓은 식당은 주곤중에게는 뜻밖에도 도서관, 말하자면 북 레스토랑이었다.      

식당 안에 책이 가득 서가에 꽃혀 있고, 안락한 소파에 앉아 손님들은 식사를 하면서 독서와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책에서 풍겨 나오는 지적인 냄새가 프랑스 요리의 향과 섞여 레스토랑은  차분하면서도 교양있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노명찬의 델레탕트적 기질이 엿보이는 선택이었다.      


때마침 흐르는 음악은  '솔베이지 송'. 

그리그의 페리퀸트 모음곡 중의 마지막 선율.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율이 있을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평생 기다리다 죽을 때가 되어 나타난 남편의 주검을 품에 안고 부르는 아내의 노래. 

해외출장의 첫 식사를 하면서 듣는 음악으로 묘하게 주부장의 가슴을 흔들었다. 일본에서도 늘 이곡을 주문해 들었었는데...

곡을 들을 때마다 솔베이지의 슬픔이 가슴에 저며 오는 듯 아련한 선율에 주부장은 늘 감동에 젖곤 했던 곡이다.         

“뭘로 할까?”      


노명찬이 물었다.     


“알아서...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걸로...” 


노명찬은 메뉴를 찬찬히 따져 물어가며 웨이터에게 요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곤중이 들어봐야 알 수도 없는 와인을 한 병 주문하였다. 

그들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가의 책들을 둘러보면서 소파에 푹 빠져 편안하게 마주 앉았다.      

헤아려보니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11년 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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