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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12. 2024

한여름 방정식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서핑과 바다에 푹 빠져 틈만 나면 강릉으로 향했다. 처음 몇 번은 친구의 차를 얻어 탔고, 그다음엔 강릉에 가기 위해 차를 샀고, 그런 다음에는 돈을 모아 강릉에 작은 집을 사자고 친구들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고려는 0.1%. 99.9%는 계획도 대책도 뭣도 없는 공상에 가까운 희망이었지만, '바닷가 마을 별장'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여서 한동안은 이 꿈속의 집에 마음 한편을 내어주고 소란한 나날들을 기대곤 했다. 강릉의 작은 집, 2013년식 SUV, 그 위에 내 서핑보드...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전부라고, 파도에 몸을 맡겨 보내는 하루하루가 쌓일 때마다 내 안의 믿음은 더 두꺼워져만 갔다.


그해 여름은 짧았고, 매 주말 강릉을 오갈 체력과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내게 없다는 사실은 이듬해가 돼서야 분명해졌다. 원하는 삶에 스스로의 생활을 맞춰가기에 나 혼자만의 의지는 너무나 박약했던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이끌어줬다면 코피를 흘리고 잠을 쪼개가면서 강릉살이를 계속했을지도 모르나, 나와 같은 온도로 달아올라 서로를 옆에 태우고 달려줄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지난해 세종으로 내려오고부터는 강릉이라는 도시를 아예 잊고도 살았다. 지리상으로도 강릉과 더 멀어진 데다,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온갖 장기와 피부에 염증을 달고 살만큼 피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 별장은 무슨, 전세 떠돌이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줄 서울의 집 한채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애인이 해수욕을 하러 가까운 바다로 떠나자고 했을 때 두말할 것도 없이 강릉을 고른 건 그래서였다. 동해 바다에 묻어두고 온, 한때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준 꿈의 모양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 위해서. 금요일 오후, 서울의 동쪽에서 양양고속도로를 타는 순간부터 산으로 둘러싸인 익숙한 풍경이 4년 전의 낮과 밤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강릉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했을 땐 길치인 내가 네비를 보지 않고도 숙소까지 가는 길을 훤하게 같기도 했다. 많은 것이 그대로였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선 식당, 카페, 술집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추억의 막국수집은 그 사이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게도 했지만, 솔잎 사이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는 또한 변함이 없었다. 꿈꾸고 그리워하다 끝내 흐릿하게만 남은 장면이 꼭 그대로였다.


산책을 하고, 해수욕을 하다 파라솔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밴드 음악을 듣고, 먹고 취하고 춤추고... 바닷가 마을 특유의 뜨겁고 끈적끈적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주말을 보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다가도, 4년 전과 달리 내가 두고 온 것들이 해가 지는 방향에 있다는 데 생각이 자주 미쳤다. 바닷가 마을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 나의 일상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게 어쩔 도리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었고 훌훌 털고 떠나기엔 아까운 무언가가 많이 생겼다는 뜻일 테다. 바다는 여전히 잘 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조금은 무채색의 사람으로 변했다. 언젠가는 꿈꾸는 삶의 방식에 맞춰 많은 걸 버리고 나를 바꿔나갈 용기가 생기게 될까? 그때까지 이 바다의 빛깔이 여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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