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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연정 Apr 19. 2017

초라하지만 투명했던 날들

<Everything is ok>_노래/작사/작곡 페퍼톤즈

이제 천천히 지쳐가는 우리들의 여행

서로에게 등을 기댄 채 무표정한 얼굴


점점 잊혀져만 가는 우리들의 처음

빛바랜 낡은 지도와 녹슨 나침반


쉼 없이 달려온 기나긴 이 길 위에

한 번쯤은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걸

가볍게 웃을 수 있다면


everything is ok, everything is alright

따사로운 태양은, 음 지친 나를 비추고 있어


everything is ok, everything is alright

스쳐가는 풍경은, 언제나 우릴 미소 짓게


_ <Everything is ok>

노래/작사/작곡 페퍼톤즈

서른의 중반에 다다른 어느 밤, 나는 종종 그 여행을 기억해보곤 해.

아주 많은 기차를 타고, 신발 밑창이 다 닳아 낯선 나라의 신발가게에서

처음 보는 사이즈 단위의 신발을 사 신고,

약국에 들어가 손짓과 발짓을 해 약을 구입하고 스스로를 치료하며

그렇게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많은 것을 얻게 되었던 그 시간들.

우리는 지도보다는 마음을 따라다녔고, 발끝엔 늘 커다란 물집이

잡혀 있었지만 그 고통은 왠지 달콤했어. 싫지 않았지.


낯선 침대에서 눈뜨는 아침은 늘 설레었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했거든.

살며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봐.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 기대할 수 있는

아침이 나에게 얼마나 있었는지 말이야.

우리는 지금 아무런 기대 없는 아침에 지쳐 있잖니.

이십 대의 마지막.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어.

서로의 등에 등을 기댄 채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거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우리 모두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 거야.

향수가 가득한 눈에는 그리움이 그렁그렁했겠지.

그때 우린 모두 향수병을 앓고 있는 집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었거든.


그러다 누군가 걷자! 하고 소리치면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다시 길을 나섰지.

그때 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걷자!’ 하고 소리쳐주는 누군가 늘 내 곁에 있다면 외롭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걸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걷자. 그건 가끔 사랑한다는 말로 들려.

널 지켜주겠다는 말로, 영원히 내 곁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려.

살며 수많은 여행이 있었지만 이십 대의 마지막 여행만큼

사랑스러운 여행은 다신 없을 것 같아.

나이를 말할 때 스물, 로 시작하는 그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의 색채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 여행을 끝으로 우리는 말없이 서른이 되었어.

달라진 건 없었고, 삶은 역시 지루하거나 늘 불안했지.

서른이었지만 나는 아직 사춘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철없는 어린애 같았고, 어른이란 이름을 갖는다는 게 늘 두려웠어.

어떤 ‘자격’ 같은 게 나에겐 늘 모자란다고 생각했지.

출근을 하고 사람들 속의 외로움을 견디고

출출한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문득 내 집 앞에 선 그 기분이 낯설게 느껴질 때.

혹은 너무 권태로워 견딜 수가 없을 때.

내 안의 나는 바뀌지 않는데, 나를 보여주는 숫자들은

자꾸만 바뀌어갈 때의 그 당혹스러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때.

결국 이렇게 하는 수 없이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하고 느낄 때.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준비되지 못한 어른은, 늘 이렇게 자주 울면서 자라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 어느 아침, 문득 눈을 뜨면

이십 대의 마지막 여행의 낯선 침대가 생각나.

낯선 공기 속에서 살며시 커튼을 열어보던 그 설렘이.

변하지 않겠다고, 이대로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말이야.

이제 때로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기도 하지만,

위로되는 게 있다면, 이십 대 그 여행들의 초라하지만 투명했던 아침들이야.

나에겐 그런 아침들이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 아주 깊은 안도감.


우리 많이 힘들었지만, 겨우 이렇게 흘러왔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아프고 힘겨웠던 순간들만이 결국, 우리를 웃게 한다고.

언젠가 뒤돌아보며 지을 수 있는 한 번의 미소. 그거면 된다고.


삶이 여행이 되는 것도, 여행이 삶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러니 아직 어른이 될 필요가 없는 넌, 떠나도 좋아.

가난하고 맑고 투명한 열정이 가득한 그 아침들을

만나고 돌아오기 위해서 지금 당장 말이야.

삶에 대해 아직은 막연한 두려움이 생길 때,

그 두려움이 더욱더 구체적인 모습이 되기 전에.


네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 한 모든 건 다 괜찮을 거야.

다 좋을 거야.

기억할 수 있는 행복이 많은 사람은 절대로 가난해지지 않아.


Everything is ok.

Everything is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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