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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May 21. 2023

당신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요약의 폭력

나를 싫어하는 상사가 있었다. 앞에선 싫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상사가 내가 갈 새로운 부서의 장에게 험담한 것이다. 그 상사는 새로운 부서장에게 내 책임감과 됨됨이가 별로 좋지 않다며 나를 직원으로 받는 걸 고민해 보라고 했다고 한다.


전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부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한 명이 요즘 부하직원 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대화 주제는 직원 관리의 어려움으로 옮겨갔다. 사람이 제일 힘들다며 각자 푸념을 늘어놓는 중 부서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 부서장은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개인마다 다양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단편, 들은 소문만으로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 뇌가 복잡한 걸 싫어하기 때문인지, 타인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판단의 꼬리표를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 등 뒤에 붙인다. 물론 내 뒤에도 무수한 꼬리표가 붙어있다. 그 꼬리표엔 뭐라 쓰여 있는지 누가 알려주기 전엔 알 수 없다. 


한 사람의 행위나 심지어 삶 전체를 한 단어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무모하면서도 무서운 이 행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를 찾았다. 이석원의 에세이 <나를 위한 노래>에서 이를 ‘요약의 폭력’이라 칭한다.     

이석원은 요약의 폭력에서 가장 폭력적인 점은 ‘수정하지 않는 태도’라 말한다. 사람은 언제든지 변하고 변할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사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핵심은 요약이 아닌 불변하는 생각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 순간 폭력은 시작된다.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겠다고 느꼈다.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지금도 남을 함부로 평가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뭘 안다고 그렇게 확신했을까. 끊임없는 반성만이 답인 것 같다. 누가 누굴 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 경계해야겠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했던 그 부서장을 가끔 만난다. 4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말한다. 알고 보니 자기가 틀렸다고. 과거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어른의 모습이구나 느꼈다.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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