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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25. 2020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자봐줄게

지난 주 나는 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코로나는 잠잠해진 듯 보였고 

그 날따라 햇살은 어찌나 따뜻한지 

이대로 봄이 올 것만 같았다. 

진득한 치즈 냄새가 테이블까지 풍기는 걸 보아하니 

나의 라자냐도 곧 나올 참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인이 물었다. 


"요즘 육아 어때?"


치즈 냄새에 취하기라도 했던걸까. 

난 약간 오바해서 답했다. 


"더할나위없어. 많은 것이 좋아."


지인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육아가 지옥이 아니면 다행인 마당에 

천국 비슷하다 말하는 내가 의아했던 모양이다. 

질문이 쏟아진다. 

마침 라자냐가 나왔다. 

쥐고 있던 식전빵을 얼른 내려놓고 포크를 고쳐잡았다. 

두터운 치즈에 포크를 쑤욱- 넣고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남편이랑 그 이야기했거든. 

우리 왜 이렇게 육아가 즐겁냐고."


지인은 받아적기라도 할 기세였다. 


"육아에도 오복이 있더라고. 

운좋게 우린 그걸 다 갖고 있고."


그렇게 공덕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 동안 우린 육아의 오복 타령을 이어갔다.

맞벌이 가정인 우리에게 오복은 이랬다.


1. 부부의 육아 & 가사 참여가 치우치지 않을 것 (쉽게 말해 독박 아닐 것)

2. 부부 모두 가족과의 시간이 보장된 업무 환경에 있을 것 (쉽게 말해 저녁이 있는 삶일 것)

3. 재정상황이 안정적일 것 (쉽게 말해 돈이 궁하지 않을 것)

4. 아이가 아프지 않을 것

5. 언제라도 달려와줄 지원군이 있을 것 (쉽게 말해 엄빠 찬스를 쓸 수 있을 것)


내가 빨래를 돌리면 남편은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 알아서. 

난 5시 전에 퇴근하고 남편은 집에서 일한다. 

차고 넘치진 않아도 쿠팡에서 고구마, 귤 마음껏 시켜먹을 정도는 된다. 

아이들은 크게 아픈 적이 없다. 

5분 거리 시댁, 20분 거리 친정.



말하면서도 재수없다. 육아계의 옥수저야 뭐야. 

이렇게 많은 걸 갖췄으니 육아가 지옥일 수가 없다. 다행인 일이다. 

라자냐에 와인이라도 쏟은 양 행복에 취했던 게 지난 주다. 


그리고 정확히 그 다음날부터 코로나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집안일이 배로 늘었다. 

택배 박스는 쌓여 갔고 한 번 입은 건 무조건 빨았다. 

밖에 나가지 못하니 바닥 무늬를 구경할 수 없이 뭔가가 쌓여 갔다. 


회사에 나가 있는 시간이 불안했다. 

집에 코로나를 묻혀 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회사는 전직원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아이들의 원에서 휴원 연락이 왔다. 

적어도 2주 동안 닫는다고 했다. 

긴급돌봄을 묻는 질문들이 키즈노트에 달리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남편과 다시 마주앉았다. 

적어도 2주, 길겐 몇 개월이 걸릴 지 모르는 이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관건은 이번에도 육아였다. 

나와 남편이 집에서 일을 하는 사이 아이들을 케어해야했다. 

갓 청개구리 시대로 진입한 까칠한 7살과

갓 걷기 시작한 용수철 3살을, 함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내일부터 애들 둘 다 엄마께 부탁드려야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 그래. 하나 보기도 힘드신데 둘을... 하루도 아니구..."


하려던 말이 전화 소리에 끊겼다. 엄마였다. 

손녀들 얼굴 보여달라시며 우리 상황을 물으신다. 

아이들은 휴원하게 됐고, 

우리 부부는 둘 다 재택을 하게 될 것 같다 말씀드렸다. 

내일부터 시어머니가 아이 둘 봐주실 것 같다고. 

엄마, 내가 엄마의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그러신다. 


"그럼 모레부턴 여기로 보내. 엄마가 봐줄게. 

안 그래도 아빠 오늘 외출하신다는데 어디 못 가시게 했어. 

이제 애들 봐줘야 하는데 괜히 밖에 나갔다가 코로나 묻혀올까봐. 

딸, 근데 왜 자꾸 니 얼굴만 비추니. 애들 좀 보여줘."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으시다는 듯 아이들을 보여달라 닥달하신다. 

한참을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자매가 노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먹먹함이 밀려온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인 두 분의 어머니가 오늘따라 벅찼다. 

둘째 기저귀를 갈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뭘 새삼스레. 늘 그래왔잖아."


맞는 말이다. 육아의 오복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행운' 같은게 아니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만들어주신 '기회'였다. 


1. 두 분이 늘 거들어주셨기에 - 

우리 부부가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육아 & 가사가 남아있던 거다. 


2. 두 분이 늘 거들어주셨기에 - 

가끔 있는 야근도, 회식도 마음 편했다. 


3. 두 분이 늘 거들어주셨기에 - 

우리 하고 싶은 일 하며 돈도 번다. 


4. 두 분이 늘 거들어주셨기에 - 

우리 아이들 건강한 거 먹으며 사랑도 듬뿍 받았다. 그래서 안 아팠다. 


두 분은 그냥 육아의 오복 중 다섯 번째가 아니라,

그냥.... 내 인생의 복이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 안듣는 첫째 딸기 씻어주고 계실, 

온 집안을 초토화시키려는 둘째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바쁘실, 

행여 자식들 아플까 싶어 동네 약국에 마스크 들어왔나 전화하고 계실 내 어머니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자봐줄게."


지오디의 노래가 달리 들린다. 

두 분 덕에, 우리 인생이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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