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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r 08. 2020

동동보단 담담이 명약

맘카페가 난리다.

많은 글에 ‘ㅠㅠ’가 달린다.

이유는 다양하다.


마스크를 못 사서 ㅠㅠ

아이들이 너무 답답해해서 ㅠㅠ

어린이집이 휴원해서 ㅠㅠ

긴급보육에 우리 애만 가서 ㅠㅠ

쿠팡 배송이 늦어져서 ㅠㅠ

동네에 방호복 입은 구급대원이 와서 ㅠㅠ


이 동네 엄마들이

발을 동동 거린다.


십분 이해한다.

우린 답답한 마음 하소연하는 거다.

댓글로 누군가 ‘ㅠㅠ’를 보태 달길 기다리며

우리는 마음을 동동거린다.


오늘 오후의 일곱 살 우리 딸처럼.




우리는 종이접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곱디 고운 색종이 한뭉텅이를 쌓아두고

유튜브에서 종이접기를 검색했다.

소싯적 생각이 난 나는 신이 났다.

아이도 장미를 접어야 하네

물고기네 사탕이네 방방 뛰었다.

하지만 그 흥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분홍색 종이를 고를 때까진 좋았다.

영상 보며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을 때까지도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종이의 한구석을 모아 다른 한 쪽에 맞춰야 하는

고급 스킬이 들어갈 때부터 아이의 손이 멈췄다.

일단 엄마가 배워서 천천히 가르쳐주겠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종이를 조금씩 구기며 입을 삐죽이던 아이는

순식간에 눈물을 보였다.  


"이거 안해, 안 한다고! ㅠㅠ"


내가 몇 번의 실패 끝에 하트 모양 종이 상자를

서너 개 만들 때까지도 아이는 주저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짠, 엄마 이제 안 보고도 만들 수 있어.

같이 해보자."

"안해, 안할거야. 난 하나도 못해. 싫어 ㅠㅠ"


나의 제안은 모두 거절당했다.

엄마랑 같이 접는 것도 싫다 했다.

엄마가 한 번, 딸이 한 번 접는 것도,

제일 처음 반으로 접는 것만 해달란 것도 단칼에 거절.


못해서, 하기 싫다고 했다.


아이의 입장을 안다.

피아노 건반 위 내 손가락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피아노 배우는 게 싫었다.

코드가 돌아가지 않아서

코딩도 싫었다.

그래서 그 때의 나도 연습은 않고

발만 동동댔다.

지금의 나는 피아노도 코딩도 하지 못한다.


'그래? 종이접기 그만하고 레고 할까?'

이렇게 말하며 울음을 달래줄

엄마를 기대하는 딸을 보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딸. 딸이 종이접기 잘 할 수 있는 방법 알려줄까?"


아이가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를 본다.


"일단 니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돼.

그리고 계속 하면 돼.."


토닥토닥 엄마의 위로를 기다렸던 아이는

그대로 울음의 데시벨을 높이며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ㅠㅠ'가 넘실대는 맘카페 글 중 간혹

'.' 혹은 '!'로 마쳐지는 글을 만난다.


'아이와 이런 방법으로 놀아주니 한결 좋아해요.'

'이런 모범사례가 있네요. 우리 모두 힘내봐요!'


담담하게 찍힌 마침표 하나,

씩씩하게 찍힌 느낌표 하나에

나의 불안도 잠시 마쳐진다.

나의 화이팅도 살짝 올라간다.




동동거리는 발엔 

날카로운 가시가 돋기 마련이다.

우리는 동동거리는 사이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게 되니까.


같은 불안을 가진 이들이 모이면

누군가를 함께 미워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중국인 입국 급지를 시키지 않았다고,

확진자 동선을 더 빠르게 안내해주지 않는다고,

마스크를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았다고,

마스크를 약국에서만 판다고,

대책없이 어린이집 휴원한다고-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발을 함께 동동거리며

이 나라를 원망한다.





사실 나도 프로동동러다.

특히 회사에서 그렇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답답하게 행동할 때,

내 기대와 기준에 충족되지 않을 때.


왜 저 사람은 일을 저렇게 할까.

왜 저 사람은 일을 느리게 할까.

왜 저 사람은 일을 ....


그 답답한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소연한다.

ㅠㅠ 거리며.



그런데 사회 생활 10년을 꽉 채우고서야

깨달은 진리가 있다.


우리는 대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비록 그게 최고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느리고 답답하다 느껴질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세게 고쳐 쓴다.


"저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동기에게 'ㅠㅠ' 100줄을 컨씨비하며

동동거리던 마음이 주춤한다.


대신 그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고생 많으시죠? 이런 이런 자료 공유드립니다.'

'와, 저번보다 많이 발전했어요!'



모두가 안다.

동동거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하트상자 못 접는다고

주저 앉아 울고만 있던 내 딸처럼.


동동거리며 불안을 공유하는 것보단

담담히 각자의 최선을 다할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ㅠㅠ 보다 .과 !이 점점 많아질 때 쯤

진짜 봄이 올 것 같다.



추신.


아이는 십분 쯤 지나 다시 거실로 나왔다.

쭈뼛대며 얼쩡거리는 아이를 일부러 못 본 척 하고

계속 하트종이상자를 접었다.  


아이가 내 옆에 와 앉았다.

초록색 색종이를 종이로 오리더니 그림을 그린다.

하트종이상자에 붙일 나뭇잎이라고 했다.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그거.


오늘의 종이접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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