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Aug 07. 2020

딸들이 살았으면 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엄마는 독실한 권사님이다.

엄마의 신앙은 아주 힘이 셌다.


이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일까?

삶의 모든 선택에 기준이 되었으니까.


나의 신앙 유무와는 별개로

난 그런 ‘기준’을 가진 삶을 동경했다.


종교든

학구열이든

민족애든

무엇이든


흐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오롯이 나만의 인생 줄기를 가진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내게도 그런 기준이 있단 걸 깨달은 건

지난 달, 사무실 책상에서였다.



지난 달, 회사에서

하반기 목표를 한 줄로 적으라고 했다.

그걸 펜에 각인해서 나눠준다는 말에

요며칠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을 적었다.


며칠 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문장을

펜으로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삶의 기준은 바로 내 딸들이었구나.



일곱살 큰 아이는 동생 타이르기 대장인데,

그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린이 엄마랑 더 놀고 싶구나.

린이 마음 알아요.

하지만 지금 얼~른 자야

내일 아침에 엄마랑 더 신나게 놀 수 있어요~

그렇죠?”



첫째는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복사했다.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티비에 야구를 틀어놓으면 그걸 봤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 그 옆에 앉아 책을 폈다.


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장난감 전화기를 만지작 거렸다.


딸들은 나를 거울삼아 자라고 있었다.



생각했다.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하지 말자.

티비 말고 책보라 말하지 말고

티비 끄고 책을 펴자.

핸드폰 만지지 말라 하지 말고

나부터 핸드폰을 내려놓자.


딸들이 살았으면 하는 삶을 살아보자.


이 한 줄의 다짐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셌다.




가족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카톡으로 쏘아붙이고

며칠이든 싸늘하게 지낼 일이었다.


하지만 순간 생각했다.

난 내 딸이 커서

이런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행동하길 바랄까.


“분명 그에게도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게 아닐까?”


난 그 순간 딸이 화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이 먼저 되어보길 바란다.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상대의 이야기를 기다려주길 바랄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회사에서 기대하던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의욕도 함께 떨어졌다.


생각했다.

난 딸들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길 바랄까.


아주 명료했다.


속에서 불만을 키우기 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길 바랄거다.

그래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당신 생각 잘못됐어!’ 따지기보다

‘제 생각은 이래요.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라

청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오랜만에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그만 그 삶이 부러워졌다.


그저 애써 관심 끊고

모른 척 하는 게 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원하진 않았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것 같았다.


“니가 그 삶이 부러운 이유가 뭘까?

혹 니가 갖고 싶었던 뭔가를

그 친구가 이뤄서 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애써 모른 척 밀어내는 것보단

진짜 니가 원하는게

뭔지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했다.

세상에, 내 삶이 놀랄만큼 명쾌해졌다.




아이를 위해

엄마의 삶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게

더 최선을 다해

더 옳고 따뜻하게

살아야 할 동력이다.


내 딸이 살았으면 하는 삶을

살아보일테다.


아이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프로 세신사님을 뵈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