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 크리스마스’는 어쩌다 나의 삶에 자리 잡았을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6살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공로는 아마도 TV의 몫일 것이다. 어릴 적 가장 좋은 친구이자 모든 지식과 정보의 보고였던 TV는 그렇게 시골에 사는 어린아이에게도 크리스마스라는 강렬한 문화를 알리고 동참하도록 강요했다.
두 번째 공은 나의 아버지에게 돌려야 맞겠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신 분이다. 그 시대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수학하는 것은 지금의 해외유학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신문물을 경험한 영향이었을까, 아버지는 시골사람 답지 않게 동산에서 전나무 묘목을 공수해와 거실에 트리를 만들어 주셨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는 당시 나름 고급이었던 ‘초코하임’과 같은 과자를 머리맡에 놔주시기도 했다.
세 번째 공은 스무 살 대학 새내기 때 만났던 여자친구에게 돌려야겠다. 처음으로 ‘나’의 크리스마스가 아닌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고민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니까. 함께 보낼 특별한 기념일에 설레면서도, 빠듯한 용돈으로 선물을 고민해야만 했던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고통이라는 재료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의 크리스마스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무조건 기쁘고 행복한 긍정의 날에, '현실'이라는 부정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군대에서 눈을 치웠거나 회사에서 야근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니까.
한번 무뎌진 가슴은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에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내게 처음 크리스마스를 알렸던 TV는 안 본 지 오래고, 아버지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의무가 없어졌으며, 스무 살에 만난 여자친구는 뭐 굳이 설명 안 해도. 그렇게 나의 개인적 크리스마스는 몰락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몰락한 나의 크리스마스가 몇 해 전부터 조금씩 부활하고 있다. 봄에 씨앗을 심듯 이제 막 생을 경험하는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에 크리스마스라는 행복의 씨앗을 하나 심어줘야 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뛰고, 작은 손짓 하나에도 까르르 뒤집어지는 네 살. 그 나이에는 크리스마스라는 행복의 씨앗 하나는 가슴에 꼭 심어둬야 하니까. 그 씨앗이 자리 잡아 거목으로 자라나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니까. 평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던 무뚝뚝한 나의 아버지도 의무를 다하셨던 것처럼. 내 아이의 순수한 가슴에 행복이 깃들 수 있도록. 성장해가며 자신만이 아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선물을 고민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중한 선물을 전할 수 있도록.
우리가 경험하는 크리스마스는 대부분 상업과 마케팅의 산물이다. 경기침체와 위축된 소비심리를 이유로 거리에 캐럴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올해에도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풍파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듯, 크리스마스는 보란 듯이 부활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 크리스마스가 부활하듯 말이다. 이것이 수백 년을 이어온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누구나 개인적 크리스마스의 역사와 몰락을 겪어가며 산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의미는 언제든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일 것이다.
사랑을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다고.